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해 12월3일 서울 경복궁역 인근에서 한 수험생이 자원봉사자의 오토바이를 타고 시험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억과 미래] 정병호|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전국 오후 1시10분부터 25분간, 쉿!” 온 나라가 조용해야 한다는 신문기사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영어 듣기평가 시간에는 차량 경적 금지는 물론 태평양을 건너온 비행기도 착륙을 못 한다. 무슨 엄청난 일을 하는 걸까. 올해도 50만명이 넘는 젊은이가 한날한시에 수많은 시험장에 모여 같은 문제를 푸는 시합을 한다. 한국에서는 지난 수십년 동안 되풀이된 국가적 행사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점이 하나둘이 아니다. 아마 조금 세월이 흐르면 어떻게 이렇게 이상한 일을 하면서 살았는지 우리들 자신도 믿기 어려울 것이다. 마치 당연한 일인 듯 매년 진행하고 있는 ‘수능’이란 교육게임을 한번 낯설게 보자.
수능 문제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라는 국가기관에서 수많은 출제자가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감옥살이를 하며 신중하게 만든 것이다. 혹시 정답이 틀리거나 중복되면 본인은 물론 높은 사람들까지 직책(목)을 걸어야 할 만큼 무시무시한 일이다. 그렇게 만든 수능 문제지는 이중삼중으로 보호된 특별한 상자에 담겨 경찰차의 경호를 받으면서 각 시험장으로 운반된다. 마치 올림픽 성화 봉송처럼 문제지 이송 과정은 티브이(TV)로도 중계된다. 공정한 시험 관리는 국가 차원의 엄중한 보안 사업이다.
수능이란 교육게임에 참여한 선수들은 경기 30분 전에 모두 경기장에 입장해야 한다. 선수들의 입장은 부모와 후배들의 뜨거운 응원 열기 속에서 진행된다. 시합이 열리기 전부터 전국의 사찰과 교회에서 시험 당일 문제를 잘 풀기를 비는 백일기도와 철야기도가 진행된다. 경기가 열리는 날은 모든 관공서와 기업체가 출근 시간을 늦추고, 기상청은 날씨를 예보하며 학생들의 건강 관리를 당부한다. 이 몇 시간의 경기 결과가 인생을 결정한다고 ‘진짜로’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그 몇 시간 동안의 몇 문제 풀이로 평생 사회서열을 결정한다니! 그런 끔찍한 경기가 어디 있나? 순간의 실수로 목숨이 오가는 로마의 격투기를 지켜보듯 온 사회가 숨을 죽이는 것도 당연하다. 혹시 다른 경기나 도박에서 그런 판돈을 걸고 그런 식으로 게임을 한다면 온 사회가 격분할 사행 행위일 것이다.
그럼 왜 여러 국가기관과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적극적으로 가담해서 이렇게 이상한 경기를 국가적인 스펙터클 이벤트로 만드는 것일까? ‘교육’이라는 종목과 ‘시험’이라는 경기에 온 사회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교육게임의 이념적 토대는 ‘능력주의’다. 국가 표준시험의 결과를 중시하는 풍토는 신분제적 성격을 띤 학력차별 또는 학벌차별로 이어진다. 대졸자와 고졸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길로 가게 되고, 명문대 출신은 신분적 특권을 갖게 된다. 정부 조직 안에서도 고시 합격자와 내부 승진자 사이에는 넘기 어려운 벽이 있다. 그런 차별제도 속에서 살아온 기성세대는 다시 자식들을 시험 경쟁에 매달리게 하고 교육게임을 통한 차별은 확대 재생산된다. 교육게임으로 사회적 서열을 결정하는 것은 ‘공정한’ 일이라는 믿음 위에서 ‘승자독식’의 잔혹한 게임이 열기를 더하고 있다.
교육게임은 다른 경쟁적 게임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성공과 실패의 드라마를 만든다. 승리의 환호와 패배의 눈물이 교차하는 역동적 경기다. 게임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흡인력과 중독성이 있다. 게임 과열은 어린 선수들을 혹사시키고 후원자인 부모들을 도박에 중독된 사람처럼 비현실적 베팅에 매달리게 한다. 경쟁 속에서 자라고 길들여진 젊은이들은 늘 경쟁에서 밀려날까 불안한 ‘헬조선’에서 살며 불행하다고 한다.
경쟁, 비교, 질투는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행복심리학은 밝히고 있다.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교육게임 중독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자. 우선 모든 수험생을 시험 성적으로 줄 세우는 국가 행사를 중단하고 대안을 찾아봐야 한다. 학벌차별과 사회적 차별을 ‘공정한’ 능력 평가의 결과로 여기게 하는 일을 국가가 앞장서서 공인해서는 안 된다.
모든 학생을 한줄로 세우지 않고 다각도로 적성을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선발 방식을 개발하고 시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공정하다는 착각>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교수는 하버드대 신입생을 일정한 수준의 수학 능력이 있는 지원자들 중에서 제비뽑기로 선발하자고 제안했다. 시험 점수가 온전히 자신의 실력과 노력의 결과라고 착각하는 오만한 승자와 굴욕감을 느끼는 패자를 만드는 것보다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행운’을 인정하는 제도가 더 ‘공정’하다는 것이다. 올해 수능은 국가가 나서서 엄숙하게 집행하는 마지막 교육게임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