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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후위기 ‘지금, 여기’ 일로 보도하기

등록 2021-11-11 18:29수정 2021-11-12 08:22

기후위기 대응책을 제시하고 모색하는 보도를 더 많이 해야 한다. 이제는 지구온난화가 인류에게 심각한 위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후위기 대응행동에 관한 구체적이고 다양한 논의를 언론이 이끌어야 할 때다.

[시민편집인의 눈] 김민정|​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94%. 2020년 조사에서 ‘지구온난화가 인류에게 심각한 위협’이라고 답한 우리나라 성인의 비율이다. 34개국 평균인 85%보다 꽤 높은 수치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34개국 중 두번째로 높았다.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다른 나라보다 많았다.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응답이 34개국 평균은 40%인데 한국은 54%였다. 기후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주체는 기업과 정부라는 인식이 두드러졌다. ‘개인보다는 기업과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는 응답이 일본, 중국, 미국에선 57~58%인데 한국은 86%였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잘 알고 있지만 지구의 온도를 낮추기 위한 행동을 내가 해야 한다거나 나의 행동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적다는 얘기다.

기후위기 대응행동을 이끌어내려면 언론은 어떤 보도를 지향해야 할까? 위기·위험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연구와 기후변화 보도에 관한 국내외 학자들의 제언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우선, 심리적 거리를 줄여야 한다. 심리적 거리는 네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 시간적 거리와 공간적 거리, 사회적 거리, 발생 확률 등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지금’, ‘여기’서, ‘나와 내 가족, 내 친구’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사를 써야 효과적이란 얘기다. 빙하가 녹아서 북극곰의 터전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보다는 폭염으로 가을 모기가 기승을 부려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는 얘기가 더 와닿는다.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해석수준 이론에 따르면, 기후변화를 추상적으로 설명한 경우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 경우 대응행동 의도가 높아진다. 가령 사람들은 ‘전기료를 내다’보다 ‘전기회사에 현금으로 지불하다’라는 표현을 접한 경우에 이 일이 더 가까운 시점에 일어난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와 숫자로 기후위기를 설명한 ‘수치형’ 기사보다는 폭우와 같은 이상 기상현상을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예시로 제시한 ‘내러티브형’ 기사가 위기 대응행동 의도를 높였다는 국내 연구결과도 있다. 또,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를 ‘연간’이 아니라 ‘하루’ 단위로, 이상 기상현상이 일어나는 단위도 ‘매년’이 아니라 ‘매일’로 서술하는 게 사람들로 하여금 위험을 더 가깝고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 대응 의도를 높인다고 한다.

기후위기 대응책을 제시하고 모색하는 보도를 더 많이 해야 한다. 국내 일간지 여섯곳의 기후변화 기사 2만여건을 분석한 연구가 최근 발표됐다. 분석 대상 언론사는 진보지 2개(<한겨레>, <경향신문>), 보수지 3개(<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경제지 1개(<매일경제>)였고 분석 대상 기사가 발간된 기간은 2010년 1월~2019년 6월이었다. 이 연구는 한국 언론이 기후변화로 인한 부정적 결과와 피해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 반면, 기후변화를 대응 가능한 문제로 접근하여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대응행동을 제시하는 데에는 소홀했다고 결론지었다. 이제는 지구온난화가 인류에게 심각한 위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후위기 대응행동에 관한 구체적이고 다양한 논의를 언론이 이끌어야 할 때다.

좋은 보도 사례를 발굴해 널리 알리는 것도 의미가 크다. 세계 주요 언론사들이 모여 만든 ‘지금 기후 보도하기’(Covering Climate Now)는 뛰어난 기사를 뽑아 매년 상을 주기로 했는데 지난 6일에 10개 분야 수상작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기후보도에 특화된 저널리즘 상을 만들면 좋겠다. 익숙하지 않은 기후변화 관련 용어,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적 사실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 쉽게 전달하는 노력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언론이 탄소중립을 선언하는 모습도 상상해본다. 영국 런던대학교가 203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2012년부터 매년 ‘지속가능 보고서’를 발간해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든 생각이다. <한겨레>가 시작하면 어떨까? 국내 종합일간지 중 처음으로 ‘기후변화팀’을 만들었고, 가능한 한 잉크를 적게 쓰도록 디자인한 잡지 통권호 ‘쓰레기 TMI’도 내고, 후원자들과 ‘겨리와 함께 줍깅’ 플로깅 행사도 하는 언론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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