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의 G2 기술패권 _06
군산복합체는 군과 방산업체가 중심이며, 보수적 싱크탱크·언론이 이들의 논리를 전파하는 구조로 움직인다. 이들의 논리는 조밀하게 짜인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 행정부의 정책에 반영된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기를 드는 인사는 이 네트워크에 낄 수가 없다. 이런 구조에서 사드 배치가 한국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지 등 한국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워싱턴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물론 패권 경쟁국인 중국의 입장도 고려 대상이 되기 어렵다.
2014년 5월28일 오전 로비단체들이 밀집해 있는 워싱턴 케이(K)-스트리트 인근 한 건물엔 미국 군사·안보 전문가 100여명이 몰려들었다. 외교·안보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에서 열린 ‘미사일방어(MD) 콘퍼런스’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참석자들은 주로 미국 국방부의 전·현직 고위 관료와 군 장성, 싱크탱크·방산업체·정보기관 인사들이었다. 의원 보좌관들도 눈에 띄었다. 행사 주관은 싱크탱크가 했지만 미사일방어 무기체계를 개발·생산하는 방산업체 레이시온이 후원사로 참여했다.
개회사는 애틀랜틱 카운슬 대표이사인 프레더릭 켐프가 맡았다. 켐프는 보수 언론 <월스트리트 저널> 부국장 출신으로 2007년부터 이 싱크탱크 대표이사를 맡아 규모를 4배로 키운 사업 수완이 좋은 인물이었다. 매년 열리는 이 미사일방어 콘퍼런스도 그가 대표로 취임한 2007년부터 개최해왔다.
켐프는 먼저 주요 참석자와 후원사 등을 소개했다. 미국 합동참모본부 서열 2위 제임스 위너펠드 합참차장과 미사일방어 프로젝트 추진 기관인 미사일방어청(MDA) 전직 청장 3명이 주목을 끌었다. 켐프는 “레이시온이 미사일방어에 관한 애틀랜틱 카운슬의 작업을 계속 지원해주고 이번 행사도 가능하게 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레이시온은 록히드마틴과 함께 2017년 한국에 배치된 사드 개발에도 참여한 곳이다.
켐프는 위너펠드 합참차장에게도 감사를 표시했다. 사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 행사 하루 전 그의 연설문을 미리 입수해 미국이 한국에 사드 배치를 위한 사전 부지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보도한 터였다. 켐프는 “위너펠드 차장이 신문에 ‘사전 브리핑’을 통해 오늘 행사의 주목도를 높여줬다”고 말했다.
기조연설자인 위너펠드 차장이 연단에 올랐다. 그는 참석자들 중에 낯익은 인사들이 많이 눈에 띄는 모양이었다. “학계와 산업계 파트너들, 싱크탱크 전문가들, 의회 보좌관들, 그리고 외교계의 몇몇 친구들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이 자리에 모인 것 같다. 참석자들 리스트를 보니 나의 옛 친구들도 몇몇 있다.” 이렇게 운을 뗀 그는 미국 미사일방어 전략의 기본 원리를 제시한 뒤, 미국 본토와 아시아태평양·유럽 등 대륙별 미사일방어 계획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 행사를 길게 소개한 이유는 군산복합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군산복합체는 군과 방산업체가 중심이며, 보수적 싱크탱크·언론이 이들의 논리를 전파하는 구조로 움직인다. 워싱턴 정치의 핵심으로 선거자금에 목말라 하는 의원들에게는 정치자금을 합법적으로 제공한다. 의회에는 ‘미사일방어 코커스’라는 의원모임도 구성돼 있다. 미국에서 군수와 직접 관련된 인력은 군과 민간인을 합해 230만명이 넘으며, 연관 산업으로 범위를 넓히면 그 수는 더 많아진다. 의원들은 지역구 관리를 위해서도 이들을 무시하지 못한다.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이런 현상을 두고 ‘군산복합체’를 넘어 ‘군·산·의회 복합체’라며 개탄한 바 있다.
이들의 논리는 조밀하게 짜인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 행정부의 정책에 반영된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기를 드는 인사는 이 네트워크에 낄 수가 없다. 위너펠드 차장도 2015년 퇴직한 뒤 2017년부터 레이시온의 이사회 멤버로 활동 중인데, 이런 ‘먹이사슬’의 전형적 사례다. 이런 구조에서 사드 배치가 한국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칠지 등 한국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워싱턴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물론 패권 경쟁국인 중국의 입장도 고려 대상이 되기 어렵다.
물리학자 출신으로 국방부와 국립 핵연구소, 의회, 학계 등에서 30년 이상 미사일 기술과 국가안보 문제를 연구해온 매사추세츠대(MIT) 시어도어 포스톨 명예교수는 2015년 봄 기자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 지도층에 충격적인 문제가 있다. 지도층 사람들은 미사일방어를 비난하는 것을 정치적 자살 행위로 여긴다. 대학에서 종신직을 보장받은 나 같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비판을 제기하기 쉽지만, 나도 소속 대학으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게 현실이다. 대학도 미사일방어 관련 활동에서 상당한 이득을 얻고 있다.” 그는 2015년 미국의 사드 배치와 관련해 사드 성능을 분석해 <한겨레>에 제공한 바 있다.
그는 워싱턴의 이런 구조가 국제관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지적했다. 미사일방어는 미-중, 미-러 간 핵억지력을 깨뜨릴 수 있다. 핵억지력은 한쪽의 핵 공격 시 다른 한쪽이 남은 핵전력으로 상대를 보복해 둘 다 괴멸적 타격을 입기 때문에 어느 쪽도 선제공격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그런데 어느 한쪽이 미사일방어망을 갖춰 핵미사일을 성공적으로 타격할 수 있다면 이런 ‘공포의 균형’은 무너지고, 선제공격의 가능성은 커진다. 이로 인해 군비경쟁은 가속화한다. 포스톨 교수는 “이런 프로그램이 제어되지 않은 채 계속 추진된다면, 위험이 커지고 안정을 해쳐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며 “미국은 물론 동맹국·우방국, 그리고 잠재적 경쟁국의 안보에 중대한 위험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스톨 교수의 말은 마치 예언처럼 지금 동아시아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중국은 올여름 두차례에 걸쳐 극초음속 궤도 미사일 시험을 진행했다. 이 미사일은 지구 궤도를 돌다가 대기권으로 재진입한 뒤 음속의 5배 이상으로 활강해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이른바 ‘부분궤도폭격체계’(FOBS) 기술이 적용된다. 이는 미국의 조기경보 레이더도 피할 수 있어 미사일방어망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1960년대 중반에도 이 기술이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경쟁적으로 미사일방어망 구축에 나섰는데, 소련은 이를 무력화시키고자 부분궤도폭격체계를 적용한 핵미사일 18기를 만들어 1980년대 초반까지 운용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중국이 비슷한 시험에 나선 것은 미-중 간 패권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이 핵 균형을 깨뜨리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냉전 시기를 연상시키는 미-중 간 ‘창과 방패’의 대결은 근본적으로는 신흥 강대국이 부상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지만, 군비경쟁에서 이득을 취하는 세력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할 변수임이 분명하다. ‘제국의 수도’ 워싱턴에 깃든 무기개발 이권을 둘러싼 이해관계에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늪지대 모기떼들을 제거하겠다”는 구호를 외치며 워싱턴의 이런 부패한 기득권 체제를 일소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유권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말뿐이었고, 정작 그는 백만장자들과 기득권 수혜자들을 정부 고위직에 앉혔다. 레이시온의 로비스트 출신 마크 에스퍼를 2017년 육군 참모총장, 그리고 2019년에는 국방장관에 기용한 것도 단적인 사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 외교위원장을 7년간이나 했을 정도로 외교에 정통한 정치인이다. 그런 만큼 그의 대외정책이 군사보다는 외교를 중시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올해 1월 취임 이후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동아시아 지역에 무력 증강의 수위를 한층 높여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오바마 행정부 때 국방장관 자문관을 지낸 밴 잭슨 뉴질랜드 웰링턴 빅토리아대 교수는 최근 ‘미국이 아시아를 화약고를 바꾸고 있다’는 제목의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미국의 군사 우선주의 접근방식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는 “첨단 미사일 기술이 아시아 우방국과 경쟁국들 사이에 확산하고, 핵 강국들은 광범위한 핵무기 현대화 노력을 진행 중”이라며 “미국이 이런 우려스러운 흐름의 원인은 아니지만 미국의 과도한 군사적 접근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핵추진 잠수함 기술의 오스트레일리아 이전, 일본의 장거리 순항미사일 연장 검토,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 해제 등의 조처를 중국을 불안하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제임스 액턴 핵정책프로그램 국장은 “미국은 오래전부터 중국과 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협상을 원했으나 중국이 거부했다”며 “미국이 미사일방어 정책을 재고하는 것이 교착 상태를 깨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지를 놓고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에 주고받기식의 거래를 시작할 때라고 촉구했다.
박현 논설위원.
1994년부터 경제·국제·사회부에서 주로 일했으며, 워싱턴특파원·국제부장·경제부장·부국장 등을 지냈다. 특파원 시절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산복합체 등을 취재했으며, 2015년 미국의 사드 배치 의도를 폭로한 보도로 관훈언론상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알리바바 등 중국 주요 첨단기업과 금융회사들의 발전상을 현장 취재했다. G2의 패권 경쟁이 한국 경제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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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위너펠드 미국 합참차장(왼쪽)과 프레더릭 켐프 애틀랜틱 카운슬 대표이사가 2014년 5월 워싱턴 케이-스트리트 애틀랜틱 카운슬에서 미사일방어 관련 세미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뒤쪽에 미사일방어 무기체계 사진이 보인다. 애틀랜틱 카운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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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부터 경제·국제·사회부에서 주로 일했으며, 워싱턴특파원·국제부장·경제부장·부국장 등을 지냈다. 특파원 시절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산복합체 등을 취재했으며, 2015년 미국의 사드 배치 의도를 폭로한 보도로 관훈언론상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알리바바 등 중국 주요 첨단기업과 금융회사들의 발전상을 현장 취재했다. G2의 패권 경쟁이 한국 경제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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