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터에서 호박이 늦가을 햇살과 교잡하며 말려지고 있었다. 호박들은 검은 망사 위에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는데 아름다운 미학을 품고 있는 비구상 작품처럼 보였다. 시속 100㎞로 171년을 달려야 닿을 만큼 멀리 떨어진 태양의 빛이 이제야 펼쳐놓은 호박에서 멈춘다. 된장찌개에 넣곤 하는 말린 호박은 곧 우리 몸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빛은 호박으로 호박은 내 몸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그러고 보니 나는 빛이요, 우주였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