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본사 사옥. 네이버 홈페이지 갈무리
‘기사형 광고’ 제재로 지난 18일부터 1년 동안 포털에서 기사가 사라지게 된 <연합뉴스>가 23일 공적 책무 강화를 위한 노사공동위원회와 혁신·미래 비전 마련을 위한 미래전략기획위원회를 구성했다. 노사공동위원회는 기사형 광고의 제작 경위 등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잘못을 했으니 자성을 하고 개선을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눈에 띄는 것은 미래전략기획위원회다. “과감한 ‘탈포탈’ 전략을 세우라”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회사가 ‘포스트 포털, 포털 그 너머의 시대’에 대비하는 청사진을 제시하기로 한 것이다. 성기홍 사장은 “우리 목표를 단순히 포털 재입점에 둬서는 결코 안 된다”며 “포털에만 안주해온 체질과 관성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 뉴스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경로의 채널과 플랫폼을 구축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포털 체제’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어온 연합뉴스가 비록 외부 충격이 계기가 됐지만 ‘탈 포털’ 선언을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제 막 출발 단계여서 성패를 점치기 어렵지만, 포털에 장악된 한국 언론 현실에서 이런 결단을 내린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한국 언론에는 ‘포털 저널리즘’이라는 오명이 따라다닌다. 포털 의존도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아 포털이 언론 생태계를 좌지우지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46개국을 조사해 지난 6월 발표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1’을 보면, 포털을 통해 뉴스를 본다는 비율이 우리나라가 72%로 압도적 1위다. 46개국 평균 33%의 2배가 넘는다. 반면 언론사 사이트나 앱에 접속해 뉴스를 본다는 응답은 5%로 최하위다. 46개국 평균 25%의 5분의 1 수준이다. 더욱이 포털 의존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 조사에 처음 참여한 2016년엔 포털 비율이 60%, 언론사 비율이 13%였다.
언론이 포털에 뉴스를 본격적으로 공급한 지 어림잡아 20년이 된다. 처음에는 포털의 이용 편의성과 기사 배포 확장성이 침체된 한국 언론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하는데, 포털은 한국 언론의 상업주의 결합하면서 독이 됐다.
기사형 광고는 포털 저널리즘의 폐해 중 극히 일부분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저널리즘의 황폐화다. ‘포털 체제’에 갇힌 언론들이 수익과 직결된 클릭 수를 올리기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대한 자극적으로,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은 기사를 올리는 게 지상과제가 됐다. 포털 뉴스 메인 화면에는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선정적 기사, 온라인 커뮤니티의 글을 그대로 긁어온 기사, 뉴스 가치도 없는데 혼자 썼다고 ‘단독’ 을 붙인 기사,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개념 없이 내지른 발언도 앞다퉈 옮겨 적는 ‘따옴표 기사’ 등이 넘쳐난다. 독자들의 눈길만 잡는다면 기사 내용이나 가치와 관계없이 쓸 수 있고 메인 페이지에도 노출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반문이 나온다.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 드라마’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클릭 수가 올라가는 것에 반비례해 추락하는 언론의 신뢰에는 왜 눈을 감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이런 기사들 때문에 치열한 문제의식을 갖고 공들여 취재한 기사들이 설 자리를 잃어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기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다. 윤리강령이 없는 언론사가 없고 보도준칙을 만들지 않은 언론사가 없다. 그러나 모두 무용지물이다. 회사 차원에서 ‘디지털 전략’이라는 미명 아래 조직적으로 클릭 장사를 하기 때문이다. 기사 내용과 관계없이 클릭 수만 높으면 칭찬하고 포상까지 한다. 기자들이 거부하면 비정규직을 따로 뽑아 ‘온라인 대응팀’을 만든다. 아예 별도의 자회사까지 만든 신문사도 있다.
‘디지털 전략’은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좋은 기사를 더 많은 독자들이 보게 하자는 게 취지다. 맹목적으로 클릭 수를 올리는 건 디지털 전략이 아니다. 천박한
돈벌이일 뿐이다.
2008년 신문과 통신사들이 회원인 한국신문협회가 포털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한 적이 있다. 신문사 공동 뉴스포털, 포털에 기사 전문이 아닌 일부 또는 제목만 노출, 기사 내 자체 광고 삽입 등 여러 방안들을 검토했다. 공동 뉴스포털은 거액을 들여 외부 전문기관에 연구용역까지 맡겼다. 하지만 모든 방안이 다 무산됐다. 공동 뉴스포털의 경우 지분 출자 방식, 수익 배분 방안, 언론사별로 다른 포털 전재료, 투자 대비 수익성에 대한 회의 등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회원사들 간의 이해관계 조율에 실패한 것이다. 연합뉴스가 소극적이었던 것도 한 원인이 됐다. 오프라인 매체는 없고 온라인 플랫폼만 활용하는 연합뉴스가 포털에서 빠지려 하지 않았다. 신문사들이 모두 포털 뉴스 공급을 중단하더라도 기사 출고량과 속보성이 월등한 연합뉴스가 포털에 남으면 공동 뉴스포털은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
언론계 전체가 ‘포털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한번 ‘탈포털’에 시동을 걸기 바란다.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진 연합뉴스의 문제일 뿐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포털 극복이 연합뉴스만의 과제는 아니지 않은가. 신문협회가 나서기 바란다. 방송협회도 함께하면 더욱 좋겠다. 지향하는 가치와 논조, 편집 방향이 서로 달라도 저널리즘의 본령을 회복하자는 데는 뜻을 모을 수 있지 않은가. 국회 ‘언론·미디어제도 특별위원회’에서 아웃링크 의무화 법안과 포털의 독자적 편집 금지 법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것도 도움은 되겠지만, 근본적 해법과는 거리가 멀다. 또 정치권에 맡길 일도 아니다. 언론계가 주체가 되어 포털이 지배하는 뉴스 유통 생태계를 바꿔야 한다.
이미 ‘포털의 늪’에 빠져 있는 터라 답을 찾는 과정이 아주 험난할 것이다. 10여년 전의 시행착오를 꼼꼼히 짚어보고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 단칼에 끌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일단 다수의 합의가 가능한 과제부터 하나씩 진행하면서 공감의 폭을 넓히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작업을 이어가는 게 필요하다. 작게나마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도 나쁘지 않은데 그냥 가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포털 종속에서 현실 안주는 현상 유지가 아니라 추락이다. 눈앞의 이익에 매몰된다면 한국 언론에 미래는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언론사 사이트를 직접 찾는 독자가 0%가 되는 현실에 직면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jsah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