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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미국의 두 가지 긴 전쟁

등록 2006-02-14 17:26수정 2006-02-14 17:28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아침햇발
매년 이맘때면 미국 대외정책의 큰 흐름을 보여주는 연설과 보고서가 잇따른다. 몇 해 동안 그랬듯이 올해도 핵심 주제는 전쟁이다. 특히 두 가지 긴 전쟁이 앞으로 수십년 동안 지구촌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이달 초 미국 국방부가 ‘4개년 국방전략 보고서’(QDR)에서 밝힌 말 그대로의 ‘긴 전쟁’이다. 이는 ‘전지구적 대테러 전쟁’(GWOT)의 다른 이름이다. 얼마나 긴 전쟁일까? 적어도 20년 이상이다.

국방부는 이어 내놓은 ‘군사전략 목표’에서 이 전쟁의 목표를 “폭력적 과격주의(violent extremism)를 쳐부수는 것”으로 설정한 뒤 과격파를 두 부류로 정의한다. 첫째는 “사람들이 생활 방식과 사회 구성 방식을 선택할 권리를 원칙적·실천적으로 반대하는 이들”이고, 둘째는 “과격한 이념적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해 보통 사람의 살해를 지원하는 이들”이다. 이슬람 과격파를 포함해 과격 조직·네트워크·개인과 이들을 지원하는 국가·비국가가 모두 포함된다.

실체도 경계도 모호한 과격파를 지구상에서 모두 없애겠다니 기나긴 전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과격주의를 냉전시대 공산주의와 같은 차원의 적으로 놓았다. 옛소련의 붕괴와 맞먹는 전지구적 세력 재편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전쟁의 성격도 군사뿐만 아니라 정치·체제·사상전의 혼합물이 됐다.

또하나의 전쟁은 부시 대통령의 지난달 말 국정연설에 잘 나타난다. 그는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을 과거의 것으로 만들겠다”며 “2025년까지 중동에서 수입하는 석유의 75% 이상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에너지 패권전략이자 본격적인 탈석유 기술전쟁 선언이다.

미국은 매일 세계 산유량의 4분의 1인 2100만배럴의 석유를 소비하며, 이 가운데 60%를 수입한다. 중동에선 200만배럴 이상을 사들인다. 우리나라 전체 수입량과 맞먹는 규모다. 이를 대폭 줄이겠다는 것은 석유 위에 구축된 현대 문명의 구조를 바꾸겠다는 얘기다.

‘긴 전쟁’의 이면에는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석유패권을 재구축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깔려 있다. 곧, 석유패권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무리하게 긴 전쟁을 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왜 탈석유 기술전쟁을 선언했을까. 두 가지 다른 분석이 나온다.

첫째는 탈석유 선언 자체에 큰 무게가 실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국정연설 이후 중동 나라들, 특히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설이 좋은 외교 카드가 된 셈이다. 하지만 에너지 전문가들과 언론은 대부분 연설 내용의 실현 가능성을 두고 부정적 반응을 나타낸다.


둘째는 미국이 ‘긴 전쟁’의 앞날에 대해 회의하면서 진지하게 대안을 모색 중인 경우다. 실제 미국은 이미 지속 불가능한 군사국가가 돼가고 있다. 오는 10월부터 시작되는 2007 회계연도의 국방예산은 4393억달러다. 추가될 이라크전 비용까지 합하면 5천억달러가 넘는다. 부시 대통령이 처음 취임한 5년 전보다 50% 이상 늘어난 액수다. 반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비중은 갈수록 줄고 있다. ‘긴 전쟁’의 물질적 기반도 함께 취약해진다. 게다가 이 전쟁에 필수적인 국제적 지지·협조는 그보다 빨리 사라질 것이다.

어느 경우든 우리나라는 두 전쟁, 그 중에서도 탈석유 기술전쟁에 당장 대비를 시작해야 한다. 석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역량을 스스로 갖추지 않는 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김지석 논설위원 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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