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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치형의 과학 언저리] AI 복제 시대의 대통령

등록 2021-12-09 17:59수정 2021-12-10 02:32

대통령 후보는 자신을 기술적으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타자를 대변함으로써 또는 그 타자가 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표출한다. 반면 에이아이 후보가 어디든 가서 누구든 만난다고 할 때 사실 그는 어디에도 있지 않고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 에이아이 후보는 후보를 대행할 뿐 그 어떤 유권자도 대표하거나 대변하지 못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전치형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바야흐로 ‘포스트휴먼 정치’의 시대가 열리는가. 지난 6일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에이아이(AI) 윤석열’이라는 디지털 인간이 등장해서 “윤석열 후보와 너무 닮아 놀라셨습니까”라고 말을 건넸다. “에이아이 윤석열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방방곡곡 국민 여러분을 찾아갈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재명 후보 쪽은 ‘명탐정 이재봇’이라는 이름으로 후보를 닮은 디지털 아바타를 만들어 청년층 홍보에 활용했다. 김동연 후보는 ‘영입 인재 1호’라며 인공지능 대변인 ‘에이디’를 소개하고 “김동연 후보의 철학과 비전을 공유”한다는 디지털 분신 ‘윈디’도 공개했다. 후보를 복제한 인공지능 분신을 퍼뜨리는 것은 국민과 정치인의 접점을 늘리는 혁신적 선거 기술인가. 인공지능 대통령 후보들은 과연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와 도전을 상징”(에이아이 윤석열)하는가.

사람과 꼭 닮은 에이아이 후보가 유권자들을 속이고 현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른바 ‘딥페이크’ 기술이 자기편 후보를 미화하거나 상대편 후보를 비방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짜 같은 가짜들이 등장해서 책임지지 못할 말을 내뱉는다면 유권자는 진짜와 가짜,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선택을 하게 될 수 있으므로 이를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인간이 디지털 기술을 통해 완벽에 가깝게 재현될 때 정치 공동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이재명 '명탐정 이재봇'. 유튜브 채널 이재명탐정 갈무리
인공지능 이재명 '명탐정 이재봇'. 유튜브 채널 이재명탐정 갈무리

국민의힘이 지난 6일 공개한 인공지능 윤석열의 모습.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국민의힘이 지난 6일 공개한 인공지능 윤석열의 모습.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그러나 24시간 스크린 위에서만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바타와 후보 본인을 구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에이아이가 인간을 ‘너무 닮아 놀라’는 것은 잠시뿐이다. 가령 유권자와 오래 만나고 있는데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면 그가 바로 가짜 후보, 에이아이 후보다. 아바타는 바이러스의 위험을 우리와 함께 겪지 않기 때문이다. 에이아이 후보는 얼굴과 체형이 닮았을 뿐 우리와 같은 호흡 공동체, 정치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고 있지 않으며, 그것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에이아이 후보에 페이크(속임수)가 있다면 그것은 닮은 얼굴이 아니라 방방곡곡 누구든 찾아가겠다는 약속에 있다. 아바타의 생김새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마치 ‘홍길동의 분신술’처럼 후보가 직접 가지 못하는 곳에 에이아이 후보를 보내겠다는 기획이다(JTBC 뉴스). 비록 어설픈 복제품일 수 있지만, 에이아이 후보는 어디 사는 누구든 대통령 후보를 닮은 아바타를 만나고 소통할 수 있다는 첨단 기술-민주주의를 약속한다. 온라인에서 아바타와 대면할 수 있다면 실제 후보가 어디에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에이아이 후보의 말버릇과 몸짓을 평가하며 잠시 즐거워하다가도 우리는 결국 묻게 된다. 진짜 후보는 대체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있는가.

에이아이 윤석열이 여전히 화제였던 7일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고 김용균 3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것은 바로 그런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다. 아직 에이아이 심상정을 만들지 않은 그는 태안화력발전소 추모제 현장의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내가 김용균이다!”라는 팻말을 들었다. 그 시간에 거기에 가 있는 것이 바로 정치적 메시지였다. 몸이 하나뿐인 대통령 후보는 어디로 갈지, 누구 옆에 있을지 선택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는 자신을 기술적으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타자를 대변함으로써 또는 그 타자가 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표출한다. 반면 에이아이 후보가 어디든 가서 누구든 만난다고 할 때 사실 그는 어디에도 있지 않고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 에이아이 후보는 후보를 대행할 뿐 그 어떤 유권자도 대표하거나 대변하지 못한다.

재미로 해보는 선거 이벤트라면 에이아이 후보는 꽤 성공적인 기획이다. 디지털로 무한 복제된 에이아이 후보가 시공간의 제약 없이 다닌다는 설정은 코로나 시국에 적합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대통령은 모든 곳에 모든 이와 함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어디에서 누구와 있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인공지능 시대라고 해도 대통령의 일은 자신을 복제하여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대표하고 대변해야 할 타자를 찾고 만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통령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없음을 입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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