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전범선의 풀무질] 자유롭게 살거나 죽거나

등록 2021-12-20 04:59수정 2021-12-20 12:37

전범선의 풀무질

화이자 백신 1차 접종을 맞고 열흘 뒤, 나는 죽을 뻔했다. 새벽 네시, 응급실에 갔다.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과 호흡 곤란이 있었다. 이상 반응으로 심근염·심낭염 증상이 보고된다는 연구를 읽은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화이자 1차 100만건 접종당 4.4명이었다. 주로 젊은 남성에게서 발생했다. 그래도 위험보다 혜택이 크기 때문에 나는 백신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0.0000044%의 확률을 뚫고 당첨될 거라고 믿지 않았다. 그런데 내게 심장 염증을 의심케 하는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의료진은 태연했다. 하루에도 몇명씩 나 같은 사람이 온다고 했다. 세시간 정도 기다린 뒤 유전자증폭(PCR) 검사, 혈액·심전도·엑스레이 검사를 받았다. 모두 정상이었다. 의사는 검사 결과가 두가지를 의미한다고 했다. 1) 심근염이나 심낭염은 아니다. 2) 환자의 통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다. 병원에서도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진통제를 맞고 좀 쉬다가 퇴원했다.

하루가 지나니 통증이 사라졌다. 그러나 두려움은 여전하다. 2차 접종을 맞으면 죽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분명 비이성적인 공포다. 통계적으로 나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압도적이다. 백신 미접종 상태로 코로나에 걸리는 것이 더 위험하다. 하지만 그 어떤 일반론도 이제 나를 설득할 수 없다. 내가 응급실에서 느낀 고통은 확정적이었다. 어차피 모든 죽음은 개별적이고 절대적이다. 계량해서 비교할 수 없다. 혹시라도 죽으면 끝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누구에게도 전가할 수 없다. 1차보다 2차가 부작용률이 더 높다. 나는 화이자 게임을 그만두고 싶다. 1차의 확률 게임을 겪고서 2차에 도전할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백신 찬성론자다. 개인적인 경험과는 별개로 백신의 위험보다 혜택이 크다고 믿는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나 역시 2차 접종을 맞는 것이 좋다. 겨우 백신 1차를 맞고 이 정도였는데 코로나에 감염되면 얼마나 아플까? 나는 코로나냐 2차 접종이냐를 두고 저울질한다. 둘 다 목숨을 건 도박이다. 제3의 길은 없는가? 코로나도 안 걸리고 백신도 안 맞고 싶다.

독일 보건장관 옌스 슈판은 이 겨울이 끝나기 전 모든 독일인은 “백신 접종자이거나, 코로나 회복자이거나, 사망자일 것”이라고 선포했다. 대한민국 정부도 비슷한 전제로 움직인다. 제3의 길은 죽음뿐이다. 백신 패스 도입 뒤 나는 카페도 식당도 미술관도 영화관도 가지 못한다. 자유를 빼앗길수록 점점 스스로의 판단을 의심한다. 2차 접종 괜찮지 않을까? 1차도 살아남았는데, 며칠 죽도록 아프다 말겠지. 병원에서는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은 일단 안 맞는 게 좋다고 한다. 그런데 백신 미접종자는 결국 코로나에 걸려서 죽거나 회복하거나 둘 중 하나 아닌가?

21세기 생명 정치의 쟁점은 건강 주권이다. 국가가 나보다 나의 건강에 대해 더 잘 안다고 주장하면서 나의 몸과 마음을 통치한다. 과연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가? 개인적인 느낌보다 국가의 판단을 따르는 것이 생명에 이롭지 않을까? 애초 엠아르엔에이(mRNA)가 뭔지도 나는 잘 모른다. 응급실에서 굳게 다진 결의는 무너진다. 나의 주권을 양도하고 생명을 보장받고 싶다.

자유주의가 위태롭다. 내가 대학 시절을 보낸 미국 뉴햄프셔주의 모토는 “자유롭게 살거나 죽거나”다. 자유주의 국가에서 자유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라는 뜻이다. 코로나 시대의 백신 정치는 모토가 다르다. “자유롭게 살면 죽는다.” 실제 미국의 리버테리언 중에는 백신을 거부하다가 코로나에 걸려 죽는 경우가 많다. 나는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칠 용기가 없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안고 화이자 게임에 다시 참가하기로 서명한다.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풀보다 먼저 눕던 한덕수 ‘미스터리’ [박찬수 칼럼] 1.

풀보다 먼저 눕던 한덕수 ‘미스터리’ [박찬수 칼럼]

폭주하는 남성성 속 지질한 ‘킬-방원’의 향연 2.

폭주하는 남성성 속 지질한 ‘킬-방원’의 향연

도사·목사와 내란 [한승훈 칼럼] 3.

도사·목사와 내란 [한승훈 칼럼]

차기 정부 성공의 조건 [세상읽기] 4.

차기 정부 성공의 조건 [세상읽기]

[사설] 윤석열 구속기소, 신속한 재판으로 준엄히 단죄해야 5.

[사설] 윤석열 구속기소, 신속한 재판으로 준엄히 단죄해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