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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상균의 메타버스] 실재를 사로잡은 가상 인간

등록 2021-12-30 18:23수정 2022-01-06 15:07

김상균 | 인지과학자·강원대 교수

현실 공간에 실존하지 않는 가상 인간이 버추얼 인플루언서라는 부류로 등장하여 실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국내에서 탄생한 버추얼 인플루언서 중에는 지난여름에 등장한 신한라이프의 로지가 유명하며, 세계에서 인기가 가장 높은 버추얼 인플루언서로는 2016년에 등장한 릴 미켈라를 꼽는다.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300만명이 넘었고, 2020년 수익이 130억원 정도였다.

가상 인간을 얘기할 때 사이버 가수 ‘아담’을 끄집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1998년에 등장했던 아담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는데, 왜 최근 들어 대중이 가상 인간에 열광하는지 의아해하는 이들도 있다. 그때와 지금은 가상 인간을 소비하는 대중의 입장과 창작하는 기업의 입장이 모두 달라졌다. 먼저 대중의 입장을 살펴보자면, 온라인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 스마트폰 속 인공지능 비서 등을 경험하면서 실존하지 않는 인간을 상대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특히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고, 가상 세계를 현실 세계처럼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디지털 네이티브 엠제트(MZ)세대는 가상 세계 속 인플루언서를 현실 속 존재처럼 대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창작해서 활용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가상 인간은 꽤 매력적인 존재이다. 첫째, 인플루언서가 표방하는 가치와 메시지를 기업에서 조종할 수 있다.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출생부터 시작하여 과거 행적, 현재 활동과 가치관 등을 기업이 모두 설정한다. 학교 폭력, 범죄 등과 같은 어두운 과거가 갑자기 드러나서 기업의 평판에 피해를 줄 일이 없다. 둘째, 비용 대비 활용도가 높다. 컴퓨터그래픽, 인공지능 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예전에 비해 가상 인간을 제작하고 운영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줄었다. 가상 존재이기에 물리적, 정신적으로 지치지도 않는다. 필요하다면 노화 속도까지 조절할 수 있고, 동시간대에 여러 매체에서 활동할 수도 있다. 셋째, 각종 능력을 편하게 덧입힐 수 있다. 광고를 찍어야 하는데 고난도 액션 장면이 필요하다면 컴퓨터그래픽으로 쉽게 해결이 가능하다.

물론 단점도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소비자가 버추얼 인플루언서로부터 진정성을 느끼는가이다. 예를 들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했다는 배경을 깐다고 해서 대중이 그 이야기를 실제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저 허구일 뿐이다. 따라서 실제 그런 배경을 가진 사람이 등장해서 들려주는 메시지에 비해 진정성이 없다고 인식한다.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만화와 실존 인물 사이에서 어중간한 위치가 될 수도 있다. 최근 활발히 활동하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주로 실재하는 사람의 외형을 따라가고 있다. 그러나 ‘거의 사람처럼 보이네’와 ‘정말 사람인 줄 알았어’의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면이 있을 때 대중은 불쾌감이나 두려움을 느낀다. 불쾌감이나 두려움은 인플루언서가 대중에게 주기에 적절한 감정이 아니다. 끝으로 인플루언서가 표방하는 가치와 메시지를 기업에서 모두 설정하는 과정에서 작은 실수라도 발생하면 돌이키기가 어렵다. 기업이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음을 대중이 알고 있는 상황에서, 메시지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대중이 공격하는 대상은 가상 인간이 아니라 기업이 된다. ‘우리 기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델 개인의 일탈일 뿐입니다’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경제의 주도층으로 성장할수록 가상 인간의 시장 규모는 커질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아닌 타인, 또 다른 존재를 궁금해하고 애착한다. 가상 인간은 특정 기업이 혼자서 만들어낸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가 품은 또 다른 존재에 관한 욕망이 모여서 탄생한 피조물이다. 당신은 어떤 존재를 욕망하는가? 여러분들의 답변 속에 가상 인간의 미래가 있다. 그리고 가상 인간의 미래는 인간의 미래와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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