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하 |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날씨가 추우면 기억력도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실내외 온도차가 큰 날에 외출했을 때 갑작스러운 혈관 수축으로 인해 뇌에 전달되는 산소나 영양분의 양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고령의 일부 사람들에게나 해당될 얘기이다. 건망증을 추위 탓으로 돌리는 것보다는 난방을 과하게 틀지 않아야 할 또 한가지 이유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 안 그래도 기후변화 때문에 뭐라도 줄여야 할 때 아닌가.
기억력에 대해서는 좀 더 숙고할 부분이 있다. 개인적인 기억력 감퇴 말고, 우리 사회 전체의 집합적 기억력 말이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회고하는 의미와 더불어, 애초에 이 행동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 의미로 돌아보자는 것이다. 새해의 먼동이 막 트기 시작한 지금 하지 않으면 또 언제 하겠는가?
코로나19 사태가 지구촌을 덮친 지 이제 2년이 넘었고 햇수로는 4년차이다. 이 긴 혼돈의 시간 동안 이전의 삶이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이지만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전 지구적 팬데믹인 만큼 이를 둘러싼 사회적 혼란과 논쟁 그리고 후폭풍은 어쩌면 불가피한 것이리라. 하지만 잠시일 줄 알았던 이 비상사태조차 이젠 장기화되었고, 그에 대한 우리의 경험도 쌓였다. 그래서 적어도 이제는 반성이 필요한 때이다.
그간 경험 중 가장 뇌리에 남는 한가지를 꼽으라면 그 수많았던 확진자도, 죽음도, 변종도 아니다. 바로 전례가 없는 인권침해와 자유의 억압이다. 21세기의 현대사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급기야는 생존에 가장 기초적인 식사와 장보기조차 백신을 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에 금지당한 오늘의 형국 말이다. 한발 물러서서 되새겨보라. 백신 미접종이라는 이유로 식당과 마트 출입이 안 된다? 이게 충격적이지 않다면 앞으로 더 심한 인권의 침해도 용인하는 경찰국가로 가는 길을 여는 셈이 될 것이다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 보자. 방역은 국민의 삶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다. 끝도 없는 이 지긋지긋한 거리두기와 엄청난 수준의 자유 및 권리 제한도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방역의 지상목표가 된 듯한 ‘병상확보’도 마찬가지이다. 중환자가 발생할 경우 이를 수용할 여지가 있어야 된다는 것도 불특정 다수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같은 논리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라. 정작 보호 대상인 국민의 목을 조르는 손에 얼마나 더 힘을 주느냐에만 골몰하는 것이 방역의 골자가 되어버렸다.
수많은 돌파감염 사례와 고작 6개월이라는 유효기간만으로도 백신의 효력이 제한적이라는 것은 정부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는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백신은 중증으로 진행하는 확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나,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하는 것은 설사 그보다 훨씬 절대적인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은 헌법 제2장 10조에 나오는 것처럼, ‘모든’ 국민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이다. 국민을 설득하고 구조적으로도 독려할 수는 있으나, 내 몸에 하는 약물투여를 강요할 수는 없다.
더욱 황당한 것은 정부가 스스로 정한 미접종자 출입 허용에 대한 ‘나 몰라라’의 무성의한 태도이다. 1인 혼밥은 가능하게 되어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고 손님을 거부하는 식당이 다수 나타나자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당국은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말뿐이다. 그동안 국민의 권리침해 수위를 조절하는 다이얼을 원하는 대로 돌려가며 규칙을 급조해온 이들이 규제의 과잉적용에 대해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난센스이다. 보호하고 섬겨야 할 대상의 섭생 자체를 구속하고 차별하는 본말전도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