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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석기의 과학풍경] 환각제, 치료제로 다시 태어날까

등록 2022-01-11 14:17수정 2022-01-18 11:02

사이키델릭 치료는 반드시 전문가의 처방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 중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를 엠디엠에이(MDMA·엑스터시)로 치료하는 장면이다. MAPS 제공
사이키델릭 치료는 반드시 전문가의 처방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 중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를 엠디엠에이(MDMA·엑스터시)로 치료하는 장면이다. MAPS 제공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베스트셀러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의 작가인 심리학자 로런 슬레이터가 2018년 자신의 경험을 담은 저서 <블루 드림스>를 펴냈다. 청소년 시기부터 우울증을 앓아온 슬레이터는 35년 동안 정신과 약을 복용하면서 겪은 희망과 좌절을 이 책에 담았다. 그녀는 약을 먹으면 반짝 효과를 보지만 오래지 않아 더 나빠지고 그러면 다른 약으로 바꾸며 온갖 약물을 섭렵했다. 책의 구성을 보면 1장 소라진, 2장 리튬 이런 식으로 약물 이름이 제목이다.

그런데 6장 실로사이빈과 7장 엠디엠에이(MDMA·엑스터시)는 환각제, 즉 마약의 이름이다. 이들 약물에 별도의 장을 할애한 게 의아하지만 읽어보면 수긍이 간다. 광대버섯 추출물인 실로사이빈은 20세기 중반 이미 우울증을 비롯한 몇몇 정신질환과 말기암 환자의 실존적 고뇌를 가라앉히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나왔다. 내면을 맴돌고 있는 정신이 외부를 향해 열리면서 물아일체의 상태를 경험한다고 한다. 2000년대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된 엠디엠에이는 행복감과 타인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켜 자폐증이나 피티에스디(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 같은 증상을 완화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과학 논문에서는 이들 약물을 가리키는 용어로 환각제 대신 정신을 드러낸다는 뜻의 사이키델릭을 쓰고 있다. 슬레이터 역시 이들 약물을 써보려고 알아봤지만 아직 치료제로 승인이 난 상태가 아니라 뜻을 이루지 못해 아쉬워하며 쓸 수 있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학술지 <사이언스>는 연말이 오면 ‘올해의 과학 성과’를 선정하고 후보로 오른 성과 9가지도 소개한다. 지난해에는 아미노산 서열에서 단백질 구조를 거의 정확히 예측한 인공지능 연구가 뽑혔다. 그런데 후보 성과들 가운데 하나가 사이키델릭의 치료 효과를 입증한 연구다. 사고 등 외상을 겪고 힘들어하는 환자 67명을 대상으로 심리치료와 엠디엠에이 약물치료를 병행한 결과 두달 뒤 67%가 피티에스디에서 벗어났다. 반면 심리치료만 한 그룹은 32%에 그쳤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자들은 후속 임상시험이 성공하면 2023년 미국 식품의약국에 승인을 신청할 예정이다. 한편 영국의 한 기업은 기존 치료제가 듣지 않는 우울증 환자 233명을 대상으로 한차례 실로사이빈을 투여하자 3주 뒤에 3분의 1, 12주 뒤에도 4분의 1이 증상이 사라진 상태를 유지했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들 역시 대규모 임상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사이키델릭 치료제가 세상에 나올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세계보건기구는 21세기 지구촌을 위협하는 질병으로 비만과 우울증을 꼽았다. 코로나19 사태가 3년째 접어들면서 사람들의 우울감이 어느 때보다도 높다. 우리나라도 1급 마약이라는 선입견을 접고 사이키델릭 임상시험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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