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대학수학능력시험 정답결정처분 취소소송’을 낸 수능 생명과학Ⅱ 응시생들이 지난해 12월15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1심 법원 판결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김민형 |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2022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생명과학Ⅱ문항 덕분에 ‘하디-바인베르크 평형 원리’가 온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이상적인 조건하에 생명체 집단의 유전적 특성의 분포가 세대를 거치면서 변하지 않는다는 원리이다. 19세기 중반에 이루어진 멘델의 실험이 이론의 시작점이다. 그는 다량의 녹색 완두콩과 황색 완두콩을 같은 비율로 교배했을 때 차세대 콩이 전부 황색임을 관찰한 뒤 그들끼리 또 임의로 번식시키면 그다음 세대에 다시 녹색 콩이 나타나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 3 대 1 비율로 황색 콩이 여전히 더 많고, 그 뒤로도 세대마다 집단의 크기가 커지든 작아지든 3:1 비율이 계속 유지된다. 이런 비율의 불변성이 여기서 말하는 ‘평형’의 의미이다.
이 현상에 대한 설명은 많은 생물의 유전자가 쌍으로 작용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부모로부터 하나씩 물려받은 유전자의 쌍이 황-황, 황-녹, 녹-황일 경우에는 겉으로 황색으로 표현되고 녹-녹 쌍만 녹색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비율은 3:1이 된다. 두 ‘대립 유전자’ 중에 황색이 ‘우성’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나타난다. 조금만 더 복잡한 계산을 하면 이 비율이 그 뒤로도 변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디-바인베르크의 계산은 현대적 의미의 유전자 개념이 명확하게 확립되기 전 시대에 멘델의 발견과 다윈의 진화론을 융합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국 수학자 고드프리 하디의 이름이 생물학 원리에 붙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히 기이하다.(독일의 의학자 빌헬름 바인베르크도 독립적으로 같은 일을 비슷한 시기에 했다.) 하디는 일생 동안 기초 해석학과 해석적 정수론만을 연구했고, ‘순수’와 ‘응용’의 구분, 그리고 순수 수학의 우월성을 굉장히 강하게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디의 회고록 <수학자의 변명>은 이상할 정도로 유명해서 젊은 수학도와 일반인에게까지 수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데 비교적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 당시 영국 지식인의 판에 박힌 스타일로 ‘수학은 이렇다’고 자신 있게 쓴 글에 강조된 순수와 응용 사이의 대립은 지금 보면 별 현실성이 없는 좁은 식견이었다.
그런 인물이 생물학 논문을 쓰게 된 경위를 읽다 보면 그 중요한 연구를 낳은 ‘좋은 배경’과 ‘나쁜 배경’이 하나씩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유전적 성질의 평형을 설명하는 문제를 1908년께에 하디가 크리켓 동무이던 유전학자 레지널드 퍼닛을 통해 알게 됐고 1쪽 길이의 소논문이 곧 저술됐다. 그렇다면 여러 분야 동료들이 생활을 같이 하면서 쉽게 교류할 수 있는 ‘융합적 환경’이 하나의 좋은 동기를 제공했을 것이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교편 생활의 가장 즐거운 면이 바로 이렇게 식사를 하든 운동을 하든 다양한 분야 교수들과 어울리며 대화를 쉽게 할 수 있는 여건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마음만 있으면 수학 교수라고 해도 여러 자연과학은 물론이고 문학, 역사, 철학을 공부하며 수준 높은 대화를 항상 나눌 수 있게 해주는 문화가 하디의 연구에 중요했을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나쁜 배경이란 영국 학계 특유의 경쟁심이다. 특히 하디 시대에는 케임브리지대학이 학생들을 ‘경주마처럼 키운다’는 묘사가 흔했다. 이런 학문적 경쟁 문화의 중심에는 영국 교육의 경직된 시험 제도가 있다. 영국 교육은 예나 지금이나 믿기 힘들 정도로 시험 중심으로 조직돼 있다. 연말에 한번 있는 시험 기간을 위해서 거의 일년 내내 준비하는 것은 교수 생활의 상당히 피곤한 일면이다. 시험에 대한 집착은 자연스럽게 과도한 경쟁으로 이어진다. 하디도 그의 회고록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동기를 이야기하면서 ‘다른 아이들을 시험에서 이기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따라서 교수 생활에서도 누가 누구보다 똑똑한가를 알게 모르게 의식하며 사는 분위기다.(요새 젊은 교수들은 사실 이런 의식이 훨씬 약한 것 같다.) 하디에게 다른 분야 학자들을 이기고자 하는 욕망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고 논문 시작 부분에 그런 교만이 공공연하게 쓰여 있다: ‘내가 논하고자 하는 기초적인 사실이 생물학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물론 그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었던 데에는 큰 노력 없이 단순한 수학만으로 해결할 만한 문제를 던져준 ‘재수’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오만과 편견과 숭고한 탐구 정신을 하루에도 몇번씩 변덕스럽게 표현하며 살아간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과학적 발전의 복잡 다양한 양상을 다시금 되새길 기회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