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은 지난 4일 학원·독서실 등에 대해서는 방역패스의 효력을 본안 판결 때까지 정지시켰다.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어린이 과학관에 방역패스 의무적용 시설관련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편집국에서] 전정윤 | 사회정책부장
지난 4일 늦은 오후 서울행정법원이 학원 등에 대해서는 방역패스의 효력을 본안 판결 때까지 정지시켰다는 보고를 받고, 잠시 정신이 혼미했다. 칼퇴근 직전 ‘속보’가 쏟아져 들어와서도, 지난해 12살이었던 내 아이에게 이미 코로나19 백신을 접종시켜서도 아니었다. 법원이 판단 근거로 인용한 헌법 10조의 측면에서 볼 때 팬데믹에서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하는 사안인데, 결정문에는 언급돼 있지 않은 한가지가 충격이었다.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돼 있다. 헌법에 생명권에 대한 명문 규정은 없으나, 생명권은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 인정된다. 법원 결정이 있던 날 0시 기준, 5781명이 코로나19로 인해 생명권을 박탈당했다. 우리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 자영업자의 재산권이 침해당했고, 사회적 생명권 침해 수준으로 회복 불가능한 재산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는 극단적 선택으로 등 떠밀렸다.
법원이 결정문에서 밝혔듯이 “백신이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위중증률과 치명률을 현저히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고, 코로나 백신의 부작용 위험성이 기존의 다른 백신보다 크다는 증거도 보이지 않으므로, 코로나 치료제가 도입되지 않은 현 단계에서는 코로나 백신이 국민 개개인의 코로나 감염과 위중증 예방을 위하여 적극 권유”될 수 있다. 법원의 지적대로 백신의 부작용 위험이 크다는 증거가 없고 감염될 확률이 2.3배 낮아진다면, 그래서 누군가의 생명권을 침해할 가능성도 낮아진다면 개인의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은 백신 접종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정부 방역정책도 전국민 백신 접종 의무화였다. 그럼에도 접종을 설득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신체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방식이 방역패스다.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음성확인제가 가장 객관적일 테지만, 하루 평균 최대 75만건(향후 85만건)에 그치는 검사 역량으로 모두를 이틀에 한번씩 검사할 수는 없다.
백신 접종 및 방역패스의 당위성과 현실적 불가피성이 있더라도, 아이들에게까지 적용할 수 있는가. 아이들은 코로나에 감염되더라도 경증에 그칠 가능성이 높지만, 스트레스와 후유증, 학업 결손의 우려도 있다. 아이들이 가족과 학교·학원 등 지역사회 전파자가 될 경우, 고위험군 사망과 위중증 피해가 커질 수 있다. 지난 6일 방역당국의 설명을 종합하면, 12~18살 접종자의 10만건당 이상반응 신고율은 312.1건으로, 전국민 신고율 403.2건의 77% 수준이다. 이 가운데 일반 이상반응이 304.2건(97.5%), 중대한 이상반응은 7.9건(2.5%)이고, 대부분 대처법이 있다. 코로나로 현재까지 6천여명이 숨진 상황에서 아이들만은 접종 예외가 되어야 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학원 방역패스로 “미접종자의 학습권이 현저히 제한되고, 그들의 교육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직접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학교 검사소 설치 등 검사 편의성을 높여달라는 요구는 타당해 보이나, 불편하기 때문에 기본권 침해라는 주장은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생명권 앞에 명분을 잃는다. 더욱이 학원에서 감염이 확산되면, 학교 수업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애초 사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없는 아이들은 헌법 31조가 보장하는 무상교육을 받을 권리마저 박탈당할 것이다.
율라 비스는 예방 접종에 대한 명저 <면역에 관하여>에서 사회의 건강이 나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고,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는 점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그는 “우리가 사회적 몸을 무엇으로 여기기로 선택하든,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라며, “면역은 공유된 공간”이며,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라고 말했다. 2년 만에 6천여명이 숨진 팬데믹 상황에서, 연대감은 더 이상 도덕적 의미의 덕성이 아니다. 공생의 노력을 하지 않고선 공멸할 수밖에 없는 연결체라는 것을 깨닫는 지성의 힘이다. 아이들이 팬데믹 시대에 배워야 할 지혜도 공생과 공멸 사이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 ‘공유된 정원’을 함께 가꾸는 연대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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