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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양희은의 어떤 날] 마감 끝낸 그 기분, 하늘 향한 하이킥!

등록 2022-01-23 17:50수정 2022-01-24 02:31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양희은 | 가수

설을 맞아 지키기 쉽고 만만한 계획을 몇가지 세웠다.

‘산처럼 쌓여 있는 얼굴팩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써버리겠다.’(거의 썩었다 싶게 오래 묵은 것까지 다 몽땅!)

‘아무리 바빠도 휴일 아침엔 목욕탕에 가서 물살이 센 제트탕에 기대어 물마사지를 하자.’

‘아쿠아로빅과 피티(PT), 줌바댄스를 일단 다 등록하고 걸쳐놓았으니 일주일에 나흘은 운동을 하자.’

‘혼자서 사부작대며 보고픈 전시회는 놓치지 말 것.’

‘사대문 안의 고궁 산책.’

‘남편과 맛집 탐방!’

우리 부부가 어떤 이에게 호감을 보이는 경우는 그이들과의 외식이다. 집밥을 좋아하는 우리로선 큰 양보를 하는 셈이다. 초밥은 쥘 줄 모르니까 기분 내는 외식이라야 스시 먹기인데, 지난 주말 남편과 맛나게 초밥을 먹고 느닷없이 여행 기분을 내고파서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경기도 안산의 다문화거리를 찾아갔다.

일단 눈에 보이는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인적 드문 골목을 더듬으며 낯선 외국어 간판 아래를 걸었다. 엄청난 도매상 규모에 놀라고 바람 부는 썰렁함에 움츠러들었지만, 차량 통행이 금지된 골목과 양명한 공원이 눈에 들어오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고수를 즐기지 않는 나는 중국, 동남아시아 음식을 먹을 때 조심하게 된다. 낯선 골목에서 ‘어느 나라 음식을 먹을까’ 궁리하다가 이미 끝낸 점심 덕에 접었다. 벌써 기분 좋은, 남부럽지 않을 점심을 한 뒤였다. 그러니까 17년 전 <행복한 수다>라는 티브이(TV) 여행 프로를 할 때(박미선, 송은이와 함께) 러시아도 갔었는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먹었던 소시지와 우즈베키스탄의 둥그런 빵(레표시카)이 생각나 러시안 마켓을 찾았다. 생경한 진열품 가운데 몇가지 아는 맛을 챙겨 사 왔는데 마침 집에 온 손님께 내드리며 맛보니 우리 입맛에 딱 맞아 대성공이었다. 값도 싸고 맛도 좋고…. 이젠 알았으니까 다음번에 더듬지 않고 쉽게 오자고 약속했다. 대신 배낭을 준비해서 가면 좋겠다.

‘양희은의 어떤 날’ 원고를 쓰면서 안부가 궁금한 이들을 만나고 얘기 나누는 일이 잦아졌다. 어쩌다 한번일지언정 각별한 만남 속에 격의 없이 떠들며 정말 남들이 들으면 별것 아닌 얘기인데 우리끼리는 그냥 깔깔대고 울컥하며 짧은 시간을 함께 누린다. 깊이 공감을 한다. 서로를 향한 수다는 동종업자(방송쟁이들)라 사람에 대한 긴 설명 없이 잘 알아들어서 편하다. 이 동네 사람이 아니면 상황 설명하기 전 인물 설명이 장황하기에 피곤해지고 입을 다물어버린다. “울다, 웃다, 배 터지고, 눈 호강하고, 스트레스 다 풀고 오는 힐링 코스. 못 퍼줘 난리, 못 사줘 난리, 행복하게 집으로 가는 길. #먹느라사진없음”이라고 후배가 에스엔에스(SNS)에 올렸다. “ㅋㅋㅋ 신나. 우리는 만나면 너무 신나고 행복해서 서로 주려고 주려고.ㅋㅋㅋ #맛난거먹느라사진없음” 또 다른 동료가 거의 같은 사진을 올리며 설명했다.

글쓰기 덕분에 대충 전화나 톡으로 안부 전하던 사이들도 서로 얼굴 마주 보고 밥이라도 먹자고 약속을 한다. “언니만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네. 배철수 아저씨도… 두 사람은 여전하네!” “나이 칠십 넘기고 아직도 이 물에서 일하며 남아 있다는 게… 참 인물이 받쳐주냐, 체격이 훤칠하냐, 춤을 잘 추냐, 입은 비뚤어졌지, 이렇게 남아 있는 게 기적이다. 우리 다 비빌 언덕이 있기나 했냐?”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어리고 황망했던 시절, 어른들 틈에서 지금 생각하면 부당한 경우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던 얘기며, 이 안에서 동료들을 등치는 질 나쁜 선배들 얘기며, 각자 겪은 일을 서로에게 딥다 고자질해댔다.

이렇게 같은 일을 해왔고, 지금도 현역이며, 만나면 챙겨주고픈 동료들이 있으니 든든하다. 서로 무슨 말이든 하는 사이, 모여서 밥이든 걱정이든 무엇이든 나눈다. 서로의 안전과 건강을 살핀다. 그렇게 함께하며 스트레스가 없어진다. 그냥 많이 웃는다. 어쩌면 이런 것이 장수의 비결이겠다.

요즈음엔 원고를 끝내면 그야말로 하늘 향해 거침없이 날리는 하이킥처럼 홀가분하고 뿌듯하다. 드디어 한달을 보내는구나. 더듬거리며라도 해냈다. 숙제를 끝낸 개운함이 아주아주 짱이다. “혹 뭔가에 쫓겨야만 사는 맛이 나시나요? 마감이 있어야 살아 있다고 느끼는?” 글쎄다,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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