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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코로나19 속 술파티…영국 엘리트의 민낯

등록 2022-01-23 18:11수정 2022-01-24 02:31

<가디언>이 공개한 영국 총리 관저 ‘파티’ 장면. 맨 앞 테이블 좌석에 와인잔을 앞에 둔 보리스 존슨 총리(오른쪽 두번째)의 모습이 잡혔다. 출처: <가디언>
<가디언>이 공개한 영국 총리 관저 ‘파티’ 장면. 맨 앞 테이블 좌석에 와인잔을 앞에 둔 보리스 존슨 총리(오른쪽 두번째)의 모습이 잡혔다. 출처: <가디언>

[세계의 창] 티모 플렉켄슈타인 | 런던정경대 사회정책학과 부교수

규정은 누구에게 적용되는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이 질문은 폭발력 있는 새 이슈를 만들어냈다. 노박 조코비치는 이 사실을 고통스레 배워야 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백신을 맞지 않은 테니스 슈퍼스타가 입국 과정에서 예외를 인정받자 극도의 분노를 느꼈다. 영국인들 역시 보수당의 보리스 존슨 총리가 2020년 크리스마스에 다우닝가(총리 관저)에서 음주파티를 열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극도의 분노를 느껴야 했다. 당시 영국인들은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 규정으로 인해 크리스마스에도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총리실은 처음에는 코로나19 규정을 어겼다는 사실을 격렬히 부인했다. 하지만 더 많은 증거가 드러나자 이 ‘시야가 좁은’ 전략은 흔들렸다. 그리고 우린 파티와 술이 곁들여진 정부 내 모임이 더 많이 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때 ‘격렬히 분노했던’ 존슨 총리는 공무원 중 가장 서열이 높은 내각 총무에게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총리는 규정 위반자들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얼마 후 내각 총무실에서도 모임이 열렸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내각 총무는 조사 지휘권을 내려놓게 되었다. 대중의 신뢰는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정부는 이 조사가 상황을 진정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팬데믹이 가장 심하던 무렵, 총리의 수석 비서가 코로나19 규정에 어긋나는 다우닝가 가든파티에 100명이 넘는 직원들을 초대했고, 존슨과 그 부인도 참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비서는 초대장에 명백한 영어로 “자기가 마실 술은 본인이 가져오라”고 썼다. 존슨은 그 자리에 참석한 것은 맞지만, 이를 파티라기보다 ‘업무 모임’으로 여겼다고 밝혔다. 동시에 다우닝가의 정원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업무 공간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대중은 이런 언어적인 곡예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볕이 따뜻한 정원에 사람들을 초대해 술을 마신다면 이것은 ‘업무’가 아닌 파티인 것이다.

이미 확인되거나 의혹이 제기된 사적 모임과 파티의 횟수는 점점 더 늘고 있다. 야당 의원들 사이에선 파티가 없었던 날을 조사하는 게 더 빠를 것이라는 농담도 나온다. 드러나는 그림은 분명하다. 코로나19 규정을 만든 사람들이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국민들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집에 격리돼 있을 때,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고 임종도 지키지 못할 때, 심지어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의 장례식 전날까지도 정부에선 술로 흥청거리는 파티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인들의 3분의 2는 총리가 사임해야 하고, 열에 여덟은 파티에 대한 총리의 해명이 정직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인 보수당 중진 의원 중에서도 존슨이 규정을 위반하고 의회에 거짓말을 해 권위가 실추됐다며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제 그는 예전에 그랬듯 ‘선거의 제왕’이 아니다. 야당인 노동당의 지지율은 여당인 보수당보다 10%포인트나 앞서 있고, 이는 여당 평의원들을 패닉에 빠뜨리고 있다.

존슨은 가까운 미래에 총리직에서 내려오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존슨과 조코비치의 이야기, 그리고 내가 전에 쓴 ‘돈과 정치, 부패’에 관한 이야기들은 더 근본적인 문제를 보여준다. 많은 엘리트들이 자신들에겐 (일반인들과) 다른 규정이 적용된다고 믿는다는 사실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평범한 이들이 기존 정당과 정부를 외면하고, 포퓰리즘에 기울어지며, 잘못된 정보에 눈을 돌리는 것은 놀랍지 않다. 엘리트들이 사회에서 너무나 광범위하게 ‘따로 놀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 우울한 일이다. 게다가 그들은 너무 자주 책임을 모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행동에는 응분의 대가가 따른다는 것, 대중들이 쉽게 속지 않는다는 것, 신뢰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트라이커 마커스 래시포드처럼 팬데믹으로 악화된 아동 빈곤을 종식시키려는 캠페인에 참여하는 정치가나 스포츠 스타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게 다 우울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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