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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언어적 거리의 시대를 넘어

등록 2022-01-26 16:35수정 2022-01-27 02:30

사회의 언어
지난해 9월13일 종로구청 어린이집에서 교사와 어린이들이 투명마스크를 쓰고 있다. 종로구는 이날부터 관내 어린이집 3곳에서 입이 보이는 ‘소통마스크'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13일 종로구청 어린이집에서 교사와 어린이들이 투명마스크를 쓰고 있다. 종로구는 이날부터 관내 어린이집 3곳에서 입이 보이는 ‘소통마스크'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연합뉴스

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한국은 ‘마스크 논란’이 거의 없지만 미국은 다르다. 황사나 공기 오염으로 이전부터 마스크에 익숙한 한국과 달리 미국은 병원 이외의 장소에서 마스크를 쓰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2020년 팬데믹 이후 마스크가 부족해지자 오히려 관련 당국에서는 일반인들에게 쓰지 말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의 심각성을 확인한 뒤로 각 주와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 마스크 사용이 의무화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롯해서 공화당과 보수 정치 진영에서는 마스크 의무화에 반대했고, 일각에서는 반대 운동까지 펼쳤다.

마스크 이외에도 비대면 수업, 재택근무, 백신 접종 등 코로나19 대응을 둘러싼 여러 논쟁이 일어났는데, ‘과학’은 아주 중요한 핵심 도구였다. 심지어 주관적인 의견을 과학으로 포장한 온갖 주장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논쟁 가운데는 마스크가 아이들의 언어 발달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한 연구 결과도 거론되었다. 물론 당국에서는 이와는 다른 연구 결과를 인용하여 부인했다. 마스크의 효용 자체에 대한 논쟁도 빠지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마스크가 감염 확산을 막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연구 결과를 신뢰했고, 보건 당국에서는 100% 막을 수는 없지만 감염 가능성을 대폭 줄이고, 건강을 지키는 데 효과적이라고 반박했다.

이쯤에서 일상의 언어 사용에서 마스크가 미치는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그러자면 우선 입의 역할을 떠올려야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수어를 제외하고, 말할 때 사용하는 대부분의 소리는 입에서 나온다. 입 모양은 정확한 발성을 위해 소리에 따라 거의 무의식적으로 조절된다. 또는 정해진 소리 외에 말하는 이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입을 조절할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한국인은 많은 외국인이 구별하기 어려운 ‘오’와 ‘어’를 대체로 정확하게 발음하지만, 같은 소리를 내면서도 입 모양은 감정에 따라 조절하곤 한다. 그런데 그 입을 마스크로 가리고 있으니, 듣는 사람은 상대의 입 모양을 볼 수 없어서 어쩐지 불안하고, 말하는 사람도 상대의 불안을 느끼게 되어 대화는 이어지지만 묘한 거리감이 생긴다. 결국 감정을 나누는 즐거운 대화라기보다 의미 전달 중심의 건조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팬데믹이 시작된 지도 어느새 2년이 지났으니 어느덧 우리 모두 마스크에 익숙해졌지만, 이른바 ‘언어적 거리’에 익숙해지기는 여전히 어렵다.

입 모양이 아니어도 눈이나 이마를 비롯해 얼굴 전체를 총동원해서 소통하고 있긴 하다. 이른바 ‘눈치’의 효용이 커지는 형국인데, 눈 주변까지도 가리는 마스크로 이조차도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얼굴보다는 몸짓의 활용이 더 활발해지고는 있는데, 얼굴만큼 정밀하게 조절하기는 어렵다. 목소리 톤의 조절도 동원된다. 하지만 이 역시 마스크가 목소리의 일부를 가리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특히 감정을 전달하는 데 효과적인 속삭임이나 낮고 부드러운 어조와 미소는 마스크를 꿰뚫기 어렵다. 마스크 때문에 목소리를 키울 수밖에 없는데, 크기와 내용이 맞지 않아 이질감을 느낄 때도 많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이런 ‘언어적 거리’에 한편으로는 익숙해지면서 또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마스크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다. 안전하게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곳을 찾아 편히 웃고 울고 인간다운 소통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집에서 가족들과 이야기하고, 밖이라면 잘 아는 사람들만 모이는 것이다. 최근 2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큰 모임은 줄어들고 작은 모임이 늘어난 것, 닫혀 있거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해 야외 활동이 잦아진 것, 먼 곳으로 떠나는 긴 여행이 아닌 가까운 곳을 선택하는 것들이 그런 결과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끝날 팬데믹 이후는 어떻게 될까. 오늘의 전망으로는 이 집요한 바이러스는 지구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우리를 계속해서 괴롭힐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마스크는 이후로도 필수일 가능성이 높다. 인류는 차츰 어디서든 편하게 나눴던 언어적 친밀감에 대한 기대는 접고, 마스크로 인한 언어적 거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마스크가 필요 없는 작고 친밀한 공간을 더 선호하고, 그 소중함을 만끽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팬데믹과 더불어 살고 있는, 언어적 거리를 받아들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언어의 역사에 매우 독특한 시대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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