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전치형의 과학 언저리] 대면의 기술

등록 2022-02-03 18:21수정 2022-02-04 02:31

우리가 강의실에 모이는 것은 교수의 입에서 나오는 학술 정보를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정보는 강의실 바깥과 온라인에서 더 많이 더 편하게 얻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학생들을 강의실로 오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치형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주간

대학은 대면 수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작년 가을 학기에도 대면 수업을 시도한 대학들이 있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기간과 규모가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봄 학기를 앞두고는 대면 수업에 대한 의지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서울대가 전면적으로 대면 수업을 실행할 예정이라고 하고, 카이스트도 대면 수업을 기본으로 하되 필요와 여건에 따라 비대면 수업을 하는 혼합 방식으로 봄 학기를 운영하기로 했다. 대학 시스템이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신호인 것 같아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운 마음도 있다. 그동안 비대면 수업에 익숙해진 교수와 학생이 강의실에서 만날 때 또 어떤 혼란이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학의 대면 수업 재개가 비대면 수업 시스템의 실패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지난 2년 동안 많은 이들이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수업을 하는 기술을 빠르게 배우고 이에 적응해왔다. 초기에는 교수와 학생 모두 컴퓨터 화면의 작은 네모 안에 들어간 상태로는 제대로 가르치고 배울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온라인 수업이 주는 편리도 발견하게 되었다. 온라인에서는 학생을 직접 만나지 못하지만 학생의 얼굴 표정은 더 잘 볼 수 있다. 서로의 목소리도 크기를 조절해가며 들을 수 있다. 물론 학생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켜고 열심히 참여해줄 때의 얘기이긴 하다. 학생들도 교수의 강의 자료를 컴퓨터 화면에 가득 차게 설정해두면 내용을 잘 습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강의나 토론 내용을 곧바로 자막으로 옮겨주는 기능도 나오고 있다. 수업에 필요한 시각적·청각적 정보 전달에 큰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대면 수업 재개 소식은 강의실에서 학생과 교수가 만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한다. 테크놀로지를 통해 빛의 속도로 수업에 접속하는 것을 포기하면 우리는 훨씬 일찍 일어나 학교로 나갈 채비를 해야 한다. 수업과 수업 사이 주어지는 10분 남짓의 시간도 온전히 휴식에 쓸 수가 없다. 캠퍼스 다른 곳에 있는 강의실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수업에서는 모두 같은 크기로 보이던 학생들이 강의실 앞과 뒤에 앉아 있으면 서로 다르게 보인다. 학생들도 항상 화면 속 강의 자료보다 작게 보였던 교수가 실물 크기로 강단에 서 있는 모습을 낯설게 느낄 수 있다. 마이크 시스템이 없는 강의실에서는 교수의 목소리 볼륨을 학생이 조절할 수도 없다. 한마디로 대면 수업은 모두에게 번거로운 일이다.

2년 전에는 전통적인 대면 수업을 기준으로 삼아 온라인 수업을 평가했지만 이제는 온라인 수업을 기준으로 대면 수업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 과연 대면 수업은 비대면 온라인 수업의 편리와 효율을 넘어설 수 있을까. 온라인 수업이 교육의 어떤 핵심을 놓치는 것이라 의심했던 것처럼 오랜만에 경험하는 대면 수업을 불편하고 성가신 제도로 여기지는 않을까. 재작년 봄 비대면의 기술을 급하게 마련해야 했던 대학과 교수와 학생은 이제 대면의 목적과 기술을 다시 고민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대면이라는 형식만으로는 교육의 효과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면에도 준비와 적응이 필요하다.

우리가 강의실에 모이는 것은 교수의 입에서 나오는 학술 정보를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정보는 강의실 바깥과 온라인에서 더 많이 더 편하게 얻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학생들을 강의실로 오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강의실에서 왜 대면해야 하고 어떻게 대면해야 하는가?

우리가 서로 대면함으로써 발견하는 것은 학술 정보가 아니라 거기 모인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아주 가끔이지만 코로나19 이전의 수업에서 우리는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문제에 깊이 빠져들었던 경험이 있다. 대면 수업에서 우리는 서로를 대면할 뿐만 아니라 어떤 질문을 함께 대면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탐구할 가치가 있는 질문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 즉 학습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온라인 수업에서 우리가 놓친 것, 테크놀로지가 아직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각자 다른 경로로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바깥 세계의 위험을 견뎌내는 가운데 뭔가 중요한 질문에 함께 매달리고 있다는 감각이다. 그 감각을 일깨워 작은 학습 공동체들을 다시 꾸리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대면 수업의 기술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여당·보수단체 민원이 100%, 이런 선방위 필요한가 1.

[사설] 여당·보수단체 민원이 100%, 이런 선방위 필요한가

[홍세화 칼럼]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2.

[홍세화 칼럼]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이승만·박정희를 국립묘지에서 파묘하라 [왜냐면] 3.

이승만·박정희를 국립묘지에서 파묘하라 [왜냐면]

[사설] ‘채상병 사건’ 회수 몰랐다는 이종섭, 대통령실이 했나 4.

[사설] ‘채상병 사건’ 회수 몰랐다는 이종섭, 대통령실이 했나

이대로 3년 더 갈 수 있다는 오만과 착각 [아침햇발] 5.

이대로 3년 더 갈 수 있다는 오만과 착각 [아침햇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