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미국에도 ‘황제’가 있었다

등록 2022-02-03 18:22수정 2022-02-04 02:31

[나는 역사다] 조슈아 에이브러햄 노턴(1818~1880)

미국의 황제였다. 1859년에 본인이 정했다. 남들도 인정했다. 적어도 샌프란시스코의 유쾌한 시민들은 그랬다. 낡은 군복을 입은 노턴 황제에게 공짜로 먹을 것을 주었다. 1867년에 잡혀간 일이 있는데, 시민들이 항의해 곧 풀려났다. 그는 황제지만 “남의 피를 흘리게 한 일도 없고 남을 강탈한 일도 없으며 남의 나라를 약탈한 일도 없다.” 당시 지역 언론의 기사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음 따뜻한 이야기 같다. 미국 사회의 미담처럼 소개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딱한 사연의 노인을 도시 전체가 놀려먹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조슈아 에이브러햄 노턴은 1818년 2월4일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1852년에 중국의 식량 기근으로 쌀값이 폭등하리라는 정보를 듣고 쌀을 매점하려 했다. 발 빠르게 움직였다. 너무 빨리 움직인 것이 실수였다. 계약을 맺고 며칠 지나지 않아 값싼 페루산 쌀이 쏟아져 들어왔다. 쌀값은 뚝 떨어졌고 노턴은 갚을 돈이 없었다. 소송을 치르고 1850년대 후반에 파산해 빈털터리가 됐다. 한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자기가 황제라고 주장하며 돌아왔다.

시민들이 그의 기행을 따뜻하게 받아준 걸까, 아니면 그런 척하며 조롱한 걸까. 둘 다일 수도 있다. 마크 트웨인의 경우를 보자. 젊은 시절 그는 노턴을 알았다. 그를 황제로 부르면서도 퍽 딱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쓰면서는 가혹했다. 왕과 공작을 사칭하는 두 사기꾼 악당의 모델로 노턴을 이용했다. 19세기 미국은 쾌활하면서도 잔인한 사회였다.

노턴은 이상주의자였을지도 모른다. “인디언”이라 불리던 미국 원주민을 존중했고, 흑인이 차별 없이 공공시설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혐중 폭동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중국인 이민자를 괴롭히려는 폭도들을 자기 몸으로 막아선 채, 그리스도교의 기도문인 주기도문을 외웠다고 한다.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인종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뜻이었을까. 자기 역시 맞아 죽을 수 있는 상황이 정말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아무려나 차별에 맞선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에 아쉬운, 광인 한 사람의 용기다.

김태권 만화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박래군씨, 왜 그렇게 사세요? 이름대로 살았습니다 1.

박래군씨, 왜 그렇게 사세요? 이름대로 살았습니다

[유레카] ‘평화누리자치도’로 더 멀어진 ‘라스트 마일’ 2.

[유레카] ‘평화누리자치도’로 더 멀어진 ‘라스트 마일’

‘섹스’가 여전히 중요한 이유 [강석기의 과학풍경] 3.

‘섹스’가 여전히 중요한 이유 [강석기의 과학풍경]

[사설] ‘세월호 수사 외압’ 의혹 관련자가 민정수석이라니 4.

[사설] ‘세월호 수사 외압’ 의혹 관련자가 민정수석이라니

[사설] 대통령 기자회견, 국정기조 변화없는 자화자찬 안돼 5.

[사설] 대통령 기자회견, 국정기조 변화없는 자화자찬 안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