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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진순 칼럼] 누가 누굴 키워?

등록 2022-02-08 16:53수정 2022-02-09 02:33

내게 페미니즘을 다시 생각하도록 가르쳐준 것도 젊은 여성들이었다. 처음 미투가 터졌을 때 내심 당혹스럽고 불편했던 건, 그런 관행에 익숙한 나이 든 남성들만이 아니다. 적당히 침묵하고 외면하고 까칠하게 굴지 않는 게 경제적인 처신이라고 여겨온 우리 세대 여성들에게도 미투는 따끔한 회초리였다.
2019년 6월 광주 청년·청소년들과 함께 한 와글의 소셜캠페이너캠프 본행사. 재단법인 와글 제공
2019년 6월 광주 청년·청소년들과 함께 한 와글의 소셜캠페이너캠프 본행사. 재단법인 와글 제공

이진순 |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지난 수년간 청년 정치인을 지원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단체에서 일해왔다. 그 일이 탐탁지 않아 보였는지 “그렇게 해서 청년을 몇이나 키워냈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아무도 키우지 않았다. 애당초 난 청년 활동가를 키우거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간 내가 한 일이란 “나이 든 사람들한테서 배우려 하지 말고 전례가 없는 길을 스스로 내어 가시라”고 격려한 것뿐이다. 나를 포함한 이른바 586이 그리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니 그들의 성취와 비교하지 말고, 다만 586보다 더 단단하게 횡적 연대를 가져야 그들을 넘어설 수 있다고, 그러니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정치 지형에 갇히지 말고 큰 꿈으로 평생 갈 동지를 만드시라고.

그들끼리 신명 나서 의기투합을 하는 자리에 밥상을 내오거나, 하나둘 이런저런 일로 다치고 지쳐서 쉬고 싶어 찾아올 때 아궁이를 뜨듯하게 지펴주는 주막집 주모 역할이,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내 몫의 일이라고 여겨왔다. 주모를 자처하며 그들을 만나는 동안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사람은 사실 나 자신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오십 넘어 새로 배운 것의 대부분은 그들에게서 나왔다. 그러니 그들이 나를 키운 것이지 내가 그들을 키운 게 아니다.

내가 만난 청년, 청소년 중에는 기후위기, 동물권, 채식주의에 관심이 높은 이들이 많다. 며칠씩 함께 먹고 자는 워크숍에서 우유나 달걀도 먹지 않는 비건 참가자들이 있으면 삼시 세끼를 준비하는 일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멸치 국물도 안 되고 젓갈이 들어간 김치도 안 된다니 거기 맞춰 별도로 음식을 해줄 식당을 섭외하거나, 버터나 달걀이 안 들어간 빵을 멀리서 공수하느라 애를 먹었다. 물론 나는 그들 곁에서 천연덕스럽게 고기도 먹고 달걀도 먹었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채식을 고집하는지, 쓰레기 안 만드는 일에 어떻게 그렇게 열심일 수 있는지, 신기하고 궁금했다. 논리나 이념을 주창하는 것보다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는 게 백만 배는 더 힘든 일인데 말이다.

그들과 함께하는 동안 깨닫게 된 한 가지는, 이들이 가진 기후위기 감수성이 대체에너지나 그린산업 논의를 훌쩍 넘어서는 ‘전환적 세계관’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양적 성장과 물질적 풍요, 인간중심 개발주의에 대해 회의하고, 적게 쓰고 나누는 삶,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외, 평화로운 순환, 평등한 존엄을 중시한다. “지구온난화? 그거 뭐, 탄소포집기술로 해결하면 되지 않아?” 하던 내 또래 친구들의 근대적 세계관으로는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내게 페미니즘을 다시 생각하도록 가르쳐준 것도 젊은 여성들이었다. 처음 미투가 터졌을 때 내심 당혹스럽고 불편했던 건, 그런 관행에 익숙한 나이 든 남성들만이 아니다. 적당히 침묵하고 외면하고 까칠하게 굴지 않는 게 경제적인 처신이라고 여겨온 우리 세대 여성들에게도 미투는 따끔한 회초리였다. 오래전 우리에게 페미니즘이란 민주화운동의 부문 운동이었고 ‘민주화의 대의’와 ‘조직의 보위’를 위해 일상의 성차별·성폭력 문제는 공론화하지 않는다는 묵계에 대다수가 갇혀 있었다. 나이가 들어 딸한테서 “엄마는 명예남성이야!”라고 욕을 먹었다는 친구의 푸념을 들으며 “지금 딸 자랑하는 거지?”라고 박수 치며 웃어대던 내 여자 동창들의 환호는 진심이다. 동성혼을 지지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게 왜 폭력인지,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고 왜 세상을 재해석하는 프리즘인지, 내 뒤처진 성인지 감수성을 지적하고 일깨워준 젊은 여성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내가 만난 젊은 친구들이 청년세대를 대표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후 세상을 바꿀 힘은 이런 젊은이들에게서 나온다. 내가 일하는 ‘주막집’을 거쳐 간 이들 가운데 정당인이 되고 시의원·도의원이 되고, 국회의원이 된 이들도 생겼지만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내 꿈은 이들이 의회의 다수가 되고 대선 후보가 되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 치열한 설전을 벌이는 걸 보는 것이다. 차차기, 이르면 차기 대선에서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설렘을 안고 대선 토론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때까지 나처럼 늙은 주모가 할 일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열심히 배우고 변화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늙은이가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지만, 배우지 않아 ‘낡은 이’가 되어 재활용도 안 되는 폐자재가 되는 건 세상에 누를 끼치는 일이다. 늙었는데도 배우지 않고, 낡았는데도 가르치려 드는 이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 주인 행세를 하는 게 창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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