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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민형의 여담] 한국 수학 커뮤니티의 국제적 위상

등록 2022-02-09 17:45수정 2022-02-10 02:31

2010년 세계 수학자 의회에서 필즈상 수상자로 선정된 베트남의 응오바오쩌우 박사(오른쪽). 하이데라바드/AP 연합뉴스
2010년 세계 수학자 의회에서 필즈상 수상자로 선정된 베트남의 응오바오쩌우 박사(오른쪽). 하이데라바드/AP 연합뉴스

김민형 |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여러 학술 공동체 중에서 수학자들은 특히 강한 글로벌 연대 의식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세계 방방곡곡의 동료들과 소통을 하며 연구를 진행한다. 수학을 주제로 한 국제 학술행사도 유난히 많다. 코로나 시대에는 모든 연구 세미나와 학회가 온라인으로 진행돼 여행이 필요 없다 보니까, 대학의 자체 세미나도 전세계에서 온 참석자들로 구성되는 것이 일상화됐다. 또 북미나 유럽의 웬만한 수준의 대학 수학과 연구진은 유엔을 방불케 하는 국제적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독일 베를린에 사무국을 두고 있는 국제수학연맹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수학 연구자들의 존경을 받는 단체의 위치를 지키고 있고 세계 수학 문화의 형성 과정에 강하고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단체의 행사 중에 4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세계 수학자 의회가 대표적이고 여러 활동 중에 개발도상국의 수학 연구와 교육을 증진시키는 사업이 특히 중요하다. 국제수학연맹의 회원은 개인이 아니고 수학 역량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는 약 80개국의 대표성 있는 수학협회들이다. 가령 우리나라의 대한수학회가 회원 중 하나다. 연맹은 회원국 수학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친 뒤 집행위원회 그리고 전체 회의를 통해서 세계 수학의 발전을 도모하는 결정들을 내린다.

약간 특이하게 수학연맹은 회원들을 다섯 등급으로 나누어 분류한다. 등급은 수학 연구 역량과 세계 수학계에 대한 기여도를 근거로 나뉘는데, 등급에 따라 전체 회의에서 투표할 때 가중치가 부여된다. 그러니까 1등급 국가는 표를 하나 행사하고 가장 높은 5등급 국가는 표를 다섯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 나라의 수학 커뮤니티들은 이런 분류를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지난해 11월에 시작한 수학연맹의 심사 과정이 올해 1월 말에 끝나고 지난 1일 한국이 4등급에서 5등급으로 승격됐다는 결정이 발표됐을 때 나는 외국에서 활동하는 수학자로서 국내 수학계 모든 구성원에게 축하를 보내고 싶었다. 수학연맹의 5등급 국가는 총 12개국밖에 안 되고 통상 과학 선진 지역으로 간주되는 서유럽에서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4개국뿐이다.

사실 우리나라 수학계의 전체적인 현황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번 승격이 별로 놀랍지 않다. 가령 (다소 무식한) 정량적인 관점으로만 평가한 한국 수학 연구자들의 학문적 생산력이 세계 10위권을 맴돈 지도 꽤 됐고 많은 국제 수학계 리더들이 한국에서 개최되는 학회에 몇번씩은 참석했을 만큼 한국 수학은 세계 수학의 주류와 함께 가고 있다. 역량이 뛰어난 연구자들을 모시는 연구기관이나 대학의 수학과는 나라 전체에 퍼져 있고 한국 출신의 젊은 수학자들은 수학의 중심지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계속하고 있다.

국제수학연맹은 수학자들이 최고의 영예로 여기는 필즈상을 수여하는 기관으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인 필즈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상당히 기대하는 인상이다. 그러나 수학 연구 문화의 건전한 발전의 관점에선 이번의 등급 승격이 필즈상 수상보다 훨씬 중요하다. 워낙 수가 적은 필즈상 수상자로 수학 역량을 평가하는 것은 마치 억만장자의 수를 세서 나라의 경제 상태를 가늠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에 비해 수학연맹의 국가 등급 상승은 경제 전체의 균형 잡힌 성장을 보여주는 지표와 비교할 수 있다. 참고로 <포브스>에 따르면 세계에 억만장자의 수는 약 2700명이라고 한다. 그에 비해 지금까지 필즈상을 수상한 사람의 수는 통틀어서 60명이다.

상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의 관점이 틀렸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예를 들자면 경제적인 여건도 어렵고 수학연맹의 국가 등급도 1등급으로 최하위인 베트남 출신의 응오바오쩌우가 2010년에 필즈상을 받은 일은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그 나라 교육과 문화의 특이한 강점을 시사하는 바가 있고 응오바오쩌우는 그런 업적을 발판으로 베트남 수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의 석좌교수이면서 베트남 수학연구소 소장도 겸임하고 있어서 매년 상당 기간을 베트남에서 지내며 그 사회 교육과 학술 활동의 질적인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한국 수학 커뮤니티의 전체적인 성숙도에 훨씬 관심이 많다. 한국 정도 수준의 나라에서 필즈상 수상자 배출을 급하게 기다릴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이번 국제수학연맹 등급 상승이 다시금 증명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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