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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러시아 공사관으로 탈출하다

등록 2022-02-10 17:57수정 2022-02-11 02:32

[나는 역사다] 고종(1852~1919)

1895년에 일본 군대가 경복궁을 점령했다. 많은 신하들도 아버지 흥선대원군도 저쪽 편에 넘어갔다. 고종은 생명에 위협을 느꼈다. 일단 궁궐부터 빠져나와야 했다. 궁녀의 가마에 숨어 러시아 공사관으로 탈출했다. 러시아 공사관을 줄여서 아관, 임금이 피난 가는 일을 파천이라고 한다. 아관파천은 1896년 2월11일의 사건이다.

“임금이 외국 공사관으로 달아나다니.” 안 좋게 보는 의견도 많다. 그런데 마냥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인질로 잡혀 있던 상황에서 일으킨 일종의 친위 쿠데타였다. 아관파천을 계기로 고종은 일본 세력을 축출하고 정국의 주도권을 쥐었다. 자기가 바라던 대로 개혁할 기회를 다시 얻은 셈이다. 다만 그 기회를 제대로 사용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고종에 대해 알면 알수록,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와 마찬가지다. 고종은 44년이나 임금 노릇을 했다.(선조는 41년) 집권 세력 내부에 싸움이 날 때마다 교묘히 끼어들어 왕권을 강화했다. 나라 바깥의 일도 제법 많이 알았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궁궐로 돌아와 1897년 황제 자리에 올랐는데, 그때 모델로 삼은 것이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일이었다.

그런데 궁금하다. 지도자가 영리한데 나라는 왜 망했을까. 여러 생각이 든다. 고종의 목적은 권력의 독점이었던 것 같다. 신하와도 백성과도 권력을 나누어 갖기 싫었다. 나폴레옹은 국민투표로 황제가 된 사람이다. 하지만 고종은 남에게 투표권을 주기 싫었다. 투표 대신 상소를 받아 황제가 되었다. 대한제국은 이렇게 어정쩡하게 시작했다.

요즘 생각과 달리,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도 그때 꾸준히 논의되었다. 민영환의 제안이 눈길을 끈다. 다른 나라처럼 징병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종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많은 근대국가가 징병제를 도입하는 대신 참정권을 나누어주는데, 고종은 백성에게 총과 투표권을 쥐여주느니 외국 군대를 끌어다 쓸 요량이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에 차관을 얻어 미국 군대를 용병으로 데려올 허황된 생각도 했다나. 이 시절 일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크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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