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하 |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한겨울의 강추위는 때로는 견디기 힘들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옷깃을 여미고 고개를 숙인 채 이겨내는 수밖에. 그렇다면 여름의 폭염은 어떤가? 마찬가지로 어떻게든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유독 여름철의 무더위에 대해서는 기상청이 한가지 요상한 정보를 내놓는다. 바로 불쾌지수이다.
불쾌지수는 미국의 기상학자 얼 크래빌(E. C.) 톰이 1959년 고안한 것으로 날씨에 따라 인간이 느끼는 정도를 표현한 수치이다. 사실 기온과 습도로만 계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공식에서 ‘불쾌함’이 수학적으로 도출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일종의 체감온도로서 온습도지수로도 불리는데 영어로는 디스컴포트 인덱스(Discomfort Index)이다. 말하자면 ‘불편’의 정도이지 ‘불쾌’는 너무 나간 것이다. 더욱이 마치 자연현상에 대해 불쾌할 과학적 근거와 권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갈수록 심해지는 극단적 기상현상을 초래한 장본인들이 그럴 자격이 있겠는가?
그런데 이왕 이렇게 기후의 상태에 감정적 색채를 입히는 게 통용된다면 그것이 정말로 필요한 데가 하나 있다. 바로 기후변화에 대한 우리 사회와 세계의 대응이다.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내로 묶어둘 시간적 여유가 7년 남짓밖에 남지 않은 지금, 아직도 현격한 변화와 실천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얼마나 충격적인지에 대한 지수가 필요하다. 이를 편의상 ‘패닉지수’로 이름 붙여보자. 말 그대로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사회의 변화 추이가 미온적인 정도에 따라 느껴지는 패닉 심리를 나타낸 것이다.
지난 수년간 세계 탄소배출 10위 안을 벗어나본 적이 없는 대한민국의 대선, 그것이 결정할 기후시대의 미래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그런데 선거운동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지금, 기후위기 관련 공약은 미약하기 그지없다. 유권자의 88%가 이번 대선에서 기후위기 공약을 중요하게 고려할 것이라는 한 여론조사 결과가 무색할 정도로 기후변화 이슈는 전혀 부각되지 않고 있다. 패닉지수는 계속해서 상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제시된 공약과 나온 발언들을 모아 봐도 마음은 조금도 진정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의제라 할 수 있는 탄소배출 감축만 봐도, 2010년 대비 배출량 50% 감축을 내세운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공약이 가장 강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심지어 다른 후보에 비하면 좀 극단적이라는 평가마저 들린다. 하지만 이조차 현재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평균 수준 또는 그 이하이다. 지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제출한 ‘2030년까지 40% 감축안’조차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게다가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없음은 물론이다.
또한 기후에너지부의 신설이 공약으로 등장했지만 만들어진다 해도 모든 부서가 탄소배출과 관련되는 만큼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감축의 영향력을 발휘하느냐가 중요하다. 기껏 세워봤자 ‘끗발 없는’ 신생 부서로 전락할 공산이 농후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기초적인 논의나 언급조차 없다. 이 정도면 그것을 공약으로 봐야 할지 불분명할 정도이다.
에너지는 신기후체제하에서 매우 중대한 사안이지만 원전을 하느냐 마느냐가 전부인 양 다뤄지고 있다. 에너지의 사용 자체를 줄이지 않고선 반쪽짜리 정책도 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국민에게 정직하게 제시하고, 이를 위한 근본적이고 어쩌면 많은 희생이 요구될 수 있는 변화의 필요성을 설득해야 한다. 가령 탈탄소 과정에서 피해 보는 사람들에 대한 보상이 언급되고 있는데, 희생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는 사회 전체의 몫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리고 들어봐도 이런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패닉지수가 더없이 높아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