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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중, 세계 최대 전기차 생산국 발돋움…미, 추격 나서다

등록 2022-02-14 17:14수정 2022-02-15 02:31

박현의 G2 기술패권 _12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도입 단계를 넘어 이제 성장 초기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올해 말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는데, 이는 보조금을 주지 않아도 시장이 형성되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는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중국·아시아 등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2019년 중국 상하이에 첫 국외 공장을 설립했다.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의 허허벌판에 세워진 공장 모습. 상하이/박현 기자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는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중국·아시아 등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2019년 중국 상하이에 첫 국외 공장을 설립했다.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의 허허벌판에 세워진 공장 모습. 상하이/박현 기자

코로나19의 발생이 공표되기 직전인 2019년 12월 말 중국 상하이를 취재차 방문했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현장을 전하는 특집 기사를 쓰기 위해서였다. 상하이에서 본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현지 공장은 두 나라 간 기술 협력의 잠재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테슬라의 첫 국외 공장인 ‘기가팩토리3’은 상하이 시내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2시간가량 걸리는 곳에 있었다. 자유무역시험구인 린강신구역에서도 지방도로를 한참 달려야 했다. 거의 도착할 즈음엔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화물차들이 많이 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세계 최대 자동화 컨테이너 항만인 양산항이 인근에 있다는 도로 표지판이 보였다. 테슬라 공장은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주변은 모두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뿐이었다. 논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첨단 자동차를 실은 운반차가 나가는 장면은 기묘했다.

“‘우리가 힘을 집중하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상하이시 공무원은 영문으로 테슬라라고 크게 새겨진 공장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얼굴엔 자신들이 자랑스러운 일을 해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통역자는 중국 공무원들이 새로운 정책을 시행해 큰 성과를 일궈냈을 때 이런 표현을 쓴다고 했다.

실제로 이 공무원이 자랑스러워할 만했다. 연산 50만대 규모의 이 공장은 2019년 1월 기공식을 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전기차 ‘모델3’을 처음 생산하고 양산에 들어갔다. 중국 정부가 행정절차를 빠르게 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국 정부는 처음으로 지분 100%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테슬라 전기차에 대해 소비세 10% 면제 혜택도 줬다.

테슬라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장에서 잦은 생산 차질로 전기차 출고에 문제가 생기자 2018년 중국 공장 설립을 결정했다. 테슬라는 2019년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상하이 공장 건설비용은 미국 모델3 생산라인에 견줘 65%나 적게 들었다”고 밝혔다. <시엔엔>(CNN)은 중국 기업분석가를 인용해 인건비와 유럽·아시아 시장과의 접근성 등을 고려하면 전기차 생산단가를 미국 공장에 견줘 20~28%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는 상하이 공장에 대해 “미래 성장을 위한 템플릿(본보기)”이라고 말했는데, 미-중 패권 경쟁 와중에 내린 그의 선택은 비즈니스 측면에서만 보면 매우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은 현재 세계 최대 전기차 생산국이자 판매시장으로 발돋움했다. 테슬라가 세계 최대 전기차 회사이지만 시장은 중국이 세계 최대다. 세계 전기차 판매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넘는다. 하나금융투자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중국의 전기차 판매대수는 299만대로 미국(67만대)보다 4.5배나 많았다. 지난해 신차 판매 중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이 4.5%인 반면에 중국은 14.8%나 된다. 여기서 전기차는 순수전기차(BEV)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를 합한 것으로 하이브리드차(HEV)는 제외한 것이다. 순수전기차는 배터리와 전기모터만으로 구동하는 차를 말하는데 중국이 주력으로 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차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과 엔진출력을 보조하는 모터를 함께 적용한 차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는 외부 충전이 가능한 배터리를 이용한 전기모터를 주 동력원으로 하고 배터리 방전 때 일반 하이브리드차처럼 운행하는 차를 말한다.

중국은 산업 고도화, 대외 원유 의존도 완화, 탄소중립 등을 위해 2008년부터 정부 주도로 전기차 산업을 발전시켜왔다. 특히 2016년 ‘신에너지차 크레디트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는 자동차 제조사들에 일정 비율 이상의 전기차 판매를 의무화한 제도다. 중국 정부는 이 비율을 2019년까지 10% 이상으로 맞추도록 했다.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도입 단계를 넘어 이제 성장 초기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올해 말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는데, 이는 보조금을 주지 않아도 시장이 형성되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현재 중국 내 전기차 시장은 전기차 전문, 기존 완성차, 빅테크 등 많은 업체들이 진출해 있다. 중국 토종의 최대 전기차 업체는 배터리 제조사에서 출발한 비야디(BYD)다. 비야디는 중국 내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놓고 테슬라와 자웅을 겨루고 있다. 샤오펑·니오·리오토 등 3개 스타트업이 전기차 전문 신흥 브랜드로 떠오르면서 시장에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니오는 전기차 원가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배터리 비용을 구매가에서 제외해 가격을 대폭 인하하는 한편, 배터리를 따로 구독하도록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였다. 또한 상하이자동차·창청자동차·광치·지리 등 기존 자동차업체들도 전기차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여기에다 바이두·샤오미·화웨이 등 빅테크 대기업들까지 뛰어들어 2023~2024년께 전기차를 출시할 예정이다. 가히 춘추전국시대라 부를 만하다. 중국 정부는 2020년 발표한 ‘신에너지차 산업발전 계획안’에서 신차 판매량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을 2030년 30%, 2035년 5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반면 미국의 대응은 상당히 뒤처진 편이다. 트럼프 행정부 때까지 정부의 지원 정책이 제한적이어서 전기차 인프라가 미흡한데다 미국 소비자들의 자동차 선호도가 독특한 점도 한 원인이 됐다. 전기차 충전기는 올해 초 기준으로 중국이 약 260만개인 데 비해 미국은 약 13만개에 불과하다. 미국 소비자들은 대형 차와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자동차를 선호하는데다, 최근 6년간 유가가 매우 싸 내연기관차를 버릴 이유가 없었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미국도 뒤늦게 발동이 걸렸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취임 직후에 전기차 충전소를 2030년까지 50만곳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현재 최대 7500달러에서 최대 1만2500달러로 늘려주기로 했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신규 승용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을 50%로 높일 계획이다. 그러나 아이엔지(ING)그룹은 분석보고서에서 배터리 가격, 충전소 설치, 전기 밴·스포츠실용차(SUV)의 출시,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급 지속 여부 등을 주요 변수로 꼽으며 “2030년까지 전기차 비중이 34% 수준으로 목표치에는 못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산업은 정부 주도보다는 민간 기업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서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미국의 전통 자동차 업체들도 몇년 전부터 전기차 사업에 나섰지만, 아직은 테슬라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의 점유율은 70%를 넘는다. 지엠(GM)과 포드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추격전에 나섰다. 지엠은 2025년까지 350억달러를 전동화·자율주행 부문에 투자해 30종 이상의 전기차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포드는 2년 내 전기차 생산능력을 연산 60만대 수준으로 끌어올려 테슬라에 이어 세계 2위 전기차 제조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포드가 2020년 말 출시한 주력 전기차 모델인 머스탱 마하-E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테슬라 모델Y·모델3에 이어 세번째로 많이 팔렸다. 두 회사가 막대한 투자능력과 대량생산 노하우를 기반으로 전기차 출시에 본격 나서게 되면 미국 전기차 시장도 급성장할 수 있다.

전기차 시장은 앞으로 10년 이상 급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경쟁은 이제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짐 팔리 포드 대표이사는 지난 3일 투자자들과의 콘퍼런스 콜에서 “118년이나 된 포드 같은 회사가 이런 전환적인 시기에 승자가 될 것이라는 데 많은 이들이 회의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면서도 대량생산과 생산단가 인하 노하우를 전기차 생산에 적용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긴 여정이 이제 막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미-중 전기차 경쟁은 이제 서막이 올랐을 뿐이다. 다만, 전기차-배터리-소재라는 전기차 생태계를 갖춘데다 생산비용이 20% 이상 낮은 중국 자동차회사들과의 경쟁에서 미국 업체들이 얼마나 경쟁력이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장기전이 예상되는 미-중 패권 경쟁은 국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미래 산업경쟁력의 다툼이기도 하다. 자동차는 부품산업과 고용·금융 등 전후방 연관효과가 매우 큰 산업인데, 전기차는 두 나라의 산업경쟁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박현 | 논설위원. 1994년부터 경제·국제·사회부에서 주로 일했으며, 워싱턴특파원·국제부장·경제부장·부국장 등을 지냈다. 특파원 시절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산복합체 등을 취재했으며, 2015년 미국의 사드 배치 의도를 폭로한 보도로 관훈언론상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알리바바 등 중국 주요 첨단기업과 금융회사들의 발전상을 현장 취재했다. G2의 패권 경쟁이 한국 경제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있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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