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호 통일팀장
지난해 말쯤 정부의 한 관리가 중국을 방문해 북한 위폐 문제의 초점이 되고 있는 방코델타아시아은행에 대한 중국 정부의 조사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물었다. 그러자 중국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국물에 뭔가 빠졌는데 건져 내고 먹을 것도 아닌데 그냥 버리고 새걸로 바꾸면 되지 않겠는가? 중국 특유의 비유적 표현인 셈이다.
꼭 맞지는 않겠지만 중국 쪽 발상법으로 비유를 확대하면 미국의 생각은 다르다. 그런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게 아닐 뿐만 아니라 성분 검사를 해 봤더니 평양 음식점에서 제조한 국물에서는 인체에 치명적인 ‘슈퍼노트’라는 독극물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예방조처로 그 집뿐만 아니라 그 집과 거래하는 음식점엔 미국인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조처를 관보에 공지했다. 그러고는 주방장을 구속시키고 주방도 뜯어고쳐야 한다며, 평양 음식점 주인도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을 드러내고 있다. 또 그 집 주방에는 예전부터 바퀴벌레가 득실거렸다, 저 집 음식은 먹을 게 못 된다며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
그러지 않아도 우라늄이니 플루토늄이니 ‘폭탄주’ 불법제조 문제로 손님이 끊길 판이었는데 음식점 쪽은 난리가 났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1월9일 표현을 빌리면 ‘핏줄을 막아 우리를 질식시키려는 제도 말살행위’로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는 지경까지 됐다. 정작 심각한 문제라던 폭탄주 문제는 온데간데없고 ‘국그릇 사건’이 폐업 위기로 치닫는 상황이다.
위폐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핵문제를 압도하면서 체제전환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또다른 위기마저 우려되고 있는 것이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는 15일 회견에서 ‘동판과 (인쇄)장비의 폐기’를 재발 방지의 물적 증거로 요구했다. 이태식 주미 대사는 “북한이 북한 돈을 발행하는 곳에서 슈퍼노트를 위조한 것으로 미국은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대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들으면 북한은 돈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로 들린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논평을 요구하자 “버시바우는 주한 미 대사이지 한반도 대사는 아니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미국 정부의 방침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1월26일 새해기자회견은 단호하다. 그는 “북한의 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압박을 가하고 때로는 붕괴를 바라는 듯한 미국내 일부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만약에 그렇게 한다면 한-미 간에 이견이 생길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렇다면 미국이 원하는 것은 뭔가? 1월 하순 일본·중국 방문 등에 나선 로버트 졸릭 국무부 부장관은 1월23일 주일 미 대사관에서의 기자회견에서 중국과의 3차 고위(전략)대화에 앞서 자신이 알려고 하는 것은 “북한이 과연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북한이 (부정·불법 수입으로 지탱하는) 불법 체제를 계속 유지할 생각은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바뀔 가능성이 원천 배제된 것인지” 알고 싶다는 것이다. 핵이 북한의 카드라면 위폐는 미국의 카드다. 북한은 근본적인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졸릭 부장관은 “중국도 현상유지를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북한이 1980년대 중국이 걸었던 (개혁·개방의) 길을 택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일부 신호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클린턴 전 미 행정부에서 북한과의 미사일협상 대표였던 로버트 아인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최종 목표가 북한의 정권교체라면 미국은 중국의 협조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침 졸릭 부장관이 도쿄에서 회견한 날인 1월23일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열린 신년 연회에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참석했다. 그의 말이 함축적이다. “북-중 관계 발전은 중국 정부의 전략적 방침이다.”
강태호/통일팀장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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