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르딕복합 1호 국가대표’ 박제언이 지난달 9일 오후 중국 장자커우 국립 스키점프 센터에서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노르딕 복합 개인전 경기를 앞두고 연습 점프를 하고 있다. 비상한 박제언 너머로 스키점프 센터 관람석과 장자커우 국립 바이애슬론 센터의 전경이 펼쳐지고 있다. 중국은 이번 올림픽에 사용된 눈을 100% 제설기로 생산했다. 연합뉴스
김산하 |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올해는 초반부터 굵직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종의 전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제 막 끝난 대한민국 대선 등등. 이렇게 인간사가 엄청나게 다사다난할 때엔 웬만한 소식들은 쉬이 묻히고 잊히기 쉽다. 그래서 언론계에선 이슈 파이팅이 이제 기본 업무가 되어 있지 않는가. 심지어는 베이징 겨울올림픽 같은 규모의 행사도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버렸다.
이 시국에 역대급 흥행 실패의 올림픽을 왜 언급하느냐고? 오해는 말라. 필자야말로 올림픽에 무관심으로 말할 것 같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게다가 인권 문제로 서방의 외교적 보이콧을 당했고, 하는 내내 온갖 문제와 구설이 끊임없지 않았는가? 심지어는 중국이 러시아에 올림픽 끝나기 전까지 침공을 미뤄달라 했다는 서방 정보기관 보고서도 나온 마당에 이번 올림픽이 완전히 잊힌 것은 조금도 서운하지 않다.
다만 한 가지, 눈 얘기를 다시 하려는 것이다. 다름 아닌 베이징 겨울올림픽의 인공 눈.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100% 인공 눈으로 운영되었다는 이 충격적인 사실은 절대로 빨리 잊혀선 안 되는 것이다. 오히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곱씹어야 한다. 아무리 훨씬 굵직한 뉴스가 넘쳐나더라도 말이다.
물론 다른 대회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지난달 본지의 기사에도 나온 것처럼 소치는 80%, 평창은 90%를 인공 눈에 의지했다. 오죽하면 한 연구에 의하면 지금과 같은 배출 추이로는 2080년이 되면 기존 겨울올림픽 개최지 21곳 중 단 한 곳만 여전히 대회를 치를 수 있는 환경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실제로 경기장 인공위성 사진을 보면 스키장 슬로프만 밀가루를 쏟은 것처럼 실낱같이 하얗고 나머지 산지는 무미건조한 갈색이다.
없는 눈을 억지로 만들다 보니 그 여파도 클 수밖에 없다. 이번 대회의 인공 눈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물은 무려 200만㎥로 약 1억명의 사람이 하루에 마실 양에 육박했다고 한다. 여기에다 제설기 가동으로 사용된 엄청난 양의 전기, 이로 인해 산지 내에서 발생한 소음, 눈에 첨가한 화학물질의 유출 등 환경적·생태적 피해의 목록은 이어진다. 실컷 인공 눈으로 일관하다 2월13일에 쏟아진 폭설로 일부 경기가 연기되었고, 단단한 인공 눈과 부드러운 자연 눈이 섞이면서 거칠고 울퉁불퉁해져 선수 실격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자,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부러 겨울의 가장 추울 때에, 일부러 추운 나라에서 눈과 얼음에 특화된 운동 경기를 하는 겨울올림픽. 그런데 그 근간이 되는 눈과 얼음이 전부 자연적인 게 아니라면? 그렇다면 대체 왜 그 시기에, 왜 그 장소에서 한단 말인가? 다시 말해 더 이상 겨울올림픽을 겨울에, 고위도 지역에서 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또다시 말해서 겨울올림픽이라는 것을 할 이유 그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겨울올림픽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최대 지역 축제로 불리는 화천산천어축제는 2020년에 날짜를 연기해도 얼음이 안 얼었고, 개막 하루 만에는 얼음이 녹아 낚시터는 대부분 기간 문을 열지 못했다. 강원도의 추운 환경에 의지한 다른 여러 지자체 축제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책을 강구하는 데 안간힘을 냈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연을 테마로 한, 자연에 의존한 활동의 즐거움을 여전히 누리려면 그 자연이 온전해야 하는 것이다. 겨울이 겨울다울 수 없게 만들어놓고서, 겨울을 활용할 속셈만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공강우 같은 신기술을 동원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아예 안 하거나 지구의 시스템을 보호하는 수밖에 없다. 이왕이면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