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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냉정한 현실 앞에 선 윤석열 당선자

등록 2022-03-14 19:04수정 2022-03-15 02:31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감원 연수원에 마련된 당선자 집무실에서 차담회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감원 연수원에 마련된 당선자 집무실에서 차담회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편집국에서] 신승근 | 정치에디터

윤석열 당선자는 13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인수위원장에 임명했다. ‘공동정부’를 약속한 이들의 콜라보가 뜻밖의 성과를 낸다면 그보다 바람직한 건 없다.

그런데 윤 당선자는 이제 냉정한 정치 현실의 문턱에 발을 디뎠을 뿐이다. 그는 3·9 대선에서 48.6% 득표했다. 결선투표 없는 선거에선 단 한 표라도 더 얻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0.73%, 24만7077표 차, ‘깻잎 승부’로 당선자가 됐다. 기권표까지 무려 63%의 유권자가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더욱이 172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의 협조가 없다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국민의힘 110석에 국민의당 3석을 더해봐야, 처리할 수 있는 법안은 없다. 윤 당선자는 이런 사실부터 인정하고 시작해야 성공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5월10일 대통령 취임 뒤 6월1일 지방선거에서 압승해 그 힘으로 2024년 4월 총선 때까지 버텨볼 수 있다고 계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2년은 긴 시간이다. 5년 단임 대통령은 임기 초반, 힘이 있을 때 성과를 내야 한다. 1987년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문재인 대통령까지 7명의 대통령 모두 취임식 뒤 시간이 흐르는 것과 국정 장악력은 반비례 곡선을 그렸다. 현실 정치와 국정 전반을 꿰뚫고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조차 여소야대의 한계에 고전했다. 보수 본류인 김종필·박태준의 자민련과 연합해 집권하고, 그들을 총리에 기용하며 힘겹게 정부를 이끌었지만 ‘디제이피 연합’이 깨진 뒤에는 악전고투를 거듭했다.

지난 10일 윤 당선자는 “민주국가에서 여소야대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여소야대는 민주주의가 훨씬 성숙할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행스러운 인식이다. 선거 과정에선 “나도 민주당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했다. 그 이상의 것도 해야 한다. 민주당에 내줄 건 내주고, 시대 흐름을 역행하거나 반대가 심한 공약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당장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폐지해야 한다. 성별 갈라치기로 표를 얻으려는 퇴행적 전술은 파산했다. 2030 여성의 투표로 확인됐다. 윤 당선자가 내건 국민 통합과도 안 맞는다.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172석 민주당이 받아들이지 않는 한 국회를 넘어설 수 없다.

지역할당·여성할당을 자리 나눠 먹기로 보는 윤 당선자의 인식도 위험천만하다. 과거 정부에서 지역·여성 할당을 시도한 건 지역차별·성차별에 따라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잡기 위한 시도일 뿐이다. 경륜과 실력에 따라 인선하겠다는 윤 당선자를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검사 시절 경험에 기댄 것이라면 좀 더 신중해야 한다. 정부와 청와대는 일개 외청인 검찰청과 차원이 다르다. 검찰에선 내부 신망과 특수통 전문성을 앞세워 ‘윤석열 사단’을 운용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적폐 수사를 위해 그의 요구를 받아준 문재인 정부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윤 당선자도 ‘검찰공화국’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있다는 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검찰총장 출신인 그가 되레 검찰 기득권을 혁파하고 통제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의 힘을 빼는 선택을 한다면, 큰 박수를 받을 것이다. 노무현·문재인 대통령도 이루지 못한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완성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기회다. 민정수석실을 폐지해 정적과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윤 당선자의 약속이 이런 흐름의 출발점이길 기대해본다.

윤 당선자는 국민 통합을 약속했다. 안철수 대표와의 공동정부 시도는 좋지만, 너무 협소하다. 윤 당선자는 기득권, 반칙과 싸워온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권력 절반을 내주더라도 대연정을 하겠다고 했다. 내부 기득권 세력의 반발, 보수의 조롱에 실패했지만 한국 정치에서 가장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윤 당선자는 문재인 정부를 약탈 정권으로 규정한 바 있다. 하지만 승자인 그의 결심에 따라 협치와 연정의 길은 얼마든지 열릴 수 있다. “증오를 정의로 착각했다”며 ‘진영논리에 빠져 제 식구 감싸기’를 한 게 문재인 정부 실패의 원인이라 진단한 김두관 의원의 뒤늦은 반성을 윤 당선자도 곱씹어보길 바란다.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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