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감원 연수원에 마련된 당선자 집무실에서 차담회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편집국에서] 신승근 | 정치에디터
윤석열 당선자는 13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인수위원장에 임명했다. ‘공동정부’를 약속한 이들의 콜라보가 뜻밖의 성과를 낸다면 그보다 바람직한 건 없다.
그런데 윤 당선자는 이제 냉정한 정치 현실의 문턱에 발을 디뎠을 뿐이다. 그는 3·9 대선에서 48.6% 득표했다. 결선투표 없는 선거에선 단 한 표라도 더 얻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0.73%, 24만7077표 차, ‘깻잎 승부’로 당선자가 됐다. 기권표까지 무려 63%의 유권자가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더욱이 172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의 협조가 없다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국민의힘 110석에 국민의당 3석을 더해봐야, 처리할 수 있는 법안은 없다. 윤 당선자는 이런 사실부터 인정하고 시작해야 성공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5월10일 대통령 취임 뒤 6월1일 지방선거에서 압승해 그 힘으로 2024년 4월 총선 때까지 버텨볼 수 있다고 계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2년은 긴 시간이다. 5년 단임 대통령은 임기 초반, 힘이 있을 때 성과를 내야 한다. 1987년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문재인 대통령까지 7명의 대통령 모두 취임식 뒤 시간이 흐르는 것과 국정 장악력은 반비례 곡선을 그렸다. 현실 정치와 국정 전반을 꿰뚫고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조차 여소야대의 한계에 고전했다. 보수 본류인 김종필·박태준의 자민련과 연합해 집권하고, 그들을 총리에 기용하며 힘겹게 정부를 이끌었지만 ‘디제이피 연합’이 깨진 뒤에는 악전고투를 거듭했다.
지난 10일 윤 당선자는 “민주국가에서 여소야대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여소야대는 민주주의가 훨씬 성숙할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행스러운 인식이다. 선거 과정에선 “나도 민주당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했다. 그 이상의 것도 해야 한다. 민주당에 내줄 건 내주고, 시대 흐름을 역행하거나 반대가 심한 공약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당장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폐지해야 한다. 성별 갈라치기로 표를 얻으려는 퇴행적 전술은 파산했다. 2030 여성의 투표로 확인됐다. 윤 당선자가 내건 국민 통합과도 안 맞는다.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172석 민주당이 받아들이지 않는 한 국회를 넘어설 수 없다.
지역할당·여성할당을 자리 나눠 먹기로 보는 윤 당선자의 인식도 위험천만하다. 과거 정부에서 지역·여성 할당을 시도한 건 지역차별·성차별에 따라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잡기 위한 시도일 뿐이다. 경륜과 실력에 따라 인선하겠다는 윤 당선자를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검사 시절 경험에 기댄 것이라면 좀 더 신중해야 한다. 정부와 청와대는 일개 외청인 검찰청과 차원이 다르다. 검찰에선 내부 신망과 특수통 전문성을 앞세워 ‘윤석열 사단’을 운용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적폐 수사를 위해 그의 요구를 받아준 문재인 정부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윤 당선자도 ‘검찰공화국’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있다는 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검찰총장 출신인 그가 되레 검찰 기득권을 혁파하고 통제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의 힘을 빼는 선택을 한다면, 큰 박수를 받을 것이다. 노무현·문재인 대통령도 이루지 못한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완성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기회다. 민정수석실을 폐지해 정적과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윤 당선자의 약속이 이런 흐름의 출발점이길 기대해본다.
윤 당선자는 국민 통합을 약속했다. 안철수 대표와의 공동정부 시도는 좋지만, 너무 협소하다. 윤 당선자는 기득권, 반칙과 싸워온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권력 절반을 내주더라도 대연정을 하겠다고 했다. 내부 기득권 세력의 반발, 보수의 조롱에 실패했지만 한국 정치에서 가장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윤 당선자는 문재인 정부를 약탈 정권으로 규정한 바 있다. 하지만 승자인 그의 결심에 따라 협치와 연정의 길은 얼마든지 열릴 수 있다. “증오를 정의로 착각했다”며 ‘진영논리에 빠져 제 식구 감싸기’를 한 게 문재인 정부 실패의 원인이라 진단한 김두관 의원의 뒤늦은 반성을 윤 당선자도 곱씹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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