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각) 모스크바에서 화상을 통해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의 초강력 대러 제재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크렘린궁 제공. 모스크바/ 로이터·스푸트니크 연합뉴스
전범선 |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푸틴은 궁지에 몰린 쥐 이야기를 자주 한다. 어린 시절, 집 안에 쥐가 나와서 잡다가 궁지에 몰았더니 돌아서서 자신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푸틴은 러시아가 쥐라고 생각한다. 소련 붕괴 이후 서방 국가에 포위되어 존재가 위태롭다고 믿는다. 푸틴의 쥐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우크라이나 전쟁의 끝도 가늠할 수 있다.
러시아의 침략은 대실패다. 이미 푸틴은 졌다. 우크라이나 국민을 과소평가했고 자국의 군사력을 과대평가했다. 키이우를 함락해도 잃는 게 더 많다. 어째서 이토록 망신스러운 오판을 내린 것일까?
제국주의적 야망을 품은 허황된 독재자 취급하는 건 실수다. 그는 꽤나 합리적이고 일관적이다. “소련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은 심장이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되돌리기를 원하는 사람은 뇌가 없는 것”이라고 인정한다. 러시아의 경제는 미국 텍사스주보다도 작다. 나토와 붙어서 이길 재간이 없다. 푸틴의 머릿속에서 본인은 절대 제국을 건설하고 있지 않다.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사투 중이다.
2022년 2월24일부터 동유럽에 주목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서사다. 분명 러시아가 가해자이고 우크라이나가 피해자 아닌가? 1950년 6월25일부터 한반도를 봤을 때는 북한이 가해자이고 남한은 피해자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애초에 푸틴이 왜 전쟁을 개시했는지 이해하려면 그 전까지의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그의 입장은 남침을 기획한 김일성보다는 인민지원군을 보낸 마오쩌둥에 가깝다. 미군이 코앞까지 진주하는 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이승만이 압록강 물을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 완충지대가 사라졌음을 뜻한다. 무리한 군사행동을 해서라도 막아야 한다.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것처럼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내전에 개입했다. 문제의 돈바스는 8년째 정부군과 친러 반군이 충돌을 거듭해온 지역이다.
2008년, 부쿠레슈티 정상회의 때부터 푸틴은 계속 분명하게 밝혔다. 나토 확장은 러시아에 대한 실존적인 위협이다. 미군이 우크라이나에 주둔하는 것은 역지사지해서 1962년 쿠바에 소련 미사일을 배치한 것과 뭐가 다른가? 그때 케네디가 어떻게 반응했던가? 목숨 걸고 막으려 했다. 2014년, 미국이 지원하고 신나치 극우파가 가세한 유로마이단이 우크라이나 정권을 뒤집었다. 친러 대통령은 모스크바로 망명했고, 새로운 정부는 나토 가입을 천명했다. 이때도 푸틴은 격렬히 반응했다.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크름)반도를 즉각 점령했다. 작금의 사태도 어찌 보면 그때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 비교적 우호적인 트럼프 행정부가 끝나고, 전략적 동반자인 중국의 올림픽 주최가 막을 내린 후에야, 전면전을 개시했을 뿐이다.
푸틴의 전쟁범죄를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의 결정은 절대 도덕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전략적으로 사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지난 18일, 푸틴의 대국민 연설은 유난히 걱정스러웠다. 예상을 뛰어넘는 초강력 경제 제재로 등을 돌린 일부 올리가르히를 “인간 쓰레기, 배신자”로 지칭하며 “파리처럼 뱉어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서방 세계가 러시아를 분열시키고 인민 혁명을 책동하고 있다면서, 사회 붕괴를 막기 위해 “자기 정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내부 청소를 암시한 것이다. 푸틴치고도 거친 말이다. 그는 지금 궁지에 몰렸다. 쥐는 러시아가 아니라 푸틴 개인이다. 출구 전략이 없다. 망한 전쟁을 마무리하면서 정권도 유지할 수 있는 방도가 안 보인다.
나는 궁지에 몰린 푸틴이 무섭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 단추를 가진 사람이다. 마리우폴의 어린이를 학살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푸틴이 더이상 물지 않을까? 평화를 위해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