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 한겨레21부 취재2팀 기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내겐 윤석열을 찍은 15년 지기 친구가 있다. 대학교 1학년 수업시간에 처음 만난 녀석이다. 신발 끈이 풀린 채 멀뚱멀뚱 서서 어디에 앉을지 몰라 방황하던 모습을 봤다. 이후 우연이 쌓였고 인연이 이어졌다. 그와 나는 같은 기숙사에서 살게 됐다. 동아리도 함께하며 추억을 쌓았다. 날 새도록 술 마시고 놀았다. 그렇게 우린 친구가 됐다.
그는 18대 대선에서 박근혜를 찍었다.
친구 고향은 광주였다. 내게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군대를 최전방으로 다녀와서였을까. 전공인 경제학과 북한학에 빠져서였을까. “분배보다는 성장을 잘 추구할 것 같아서.” 친구에게 물어보니 돌아온 답변이었다. 다행히 아직까지 정치 문제로 다툰 적은 없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따져 묻지는 않았다. 친구도 내 앞에서 사회적 약자를 비난하거나 여성혐오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서로를 알고 애정이 있으니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은 셈이다.
어쩌면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도 함께 잘 살 수 있다. 어렵게 쌓은 그 믿음이 요즘 흔들리고 있다. 대선에서 일어난 성별 갈라치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어서다. 윤석열 당시 후보는 자세한 설명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공약으로 내놨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2030 여성들이 결집하는) 조직적 움직임이 온라인에서 보일 수 있겠으나 실제 투표 성향으로 나타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행동에 나섰다. “(이 발언들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여성은 2등 시민’이라는 무기력함도 생겼지만 그만큼 투표를 해야 한다는 이유도 됐다.” <한겨레21>과 인터뷰한 20대 여성 민경(가명)의 말이다.
정치가 시민을 공공연하게 모욕하면, 일상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어려워진다. 페미니스트로 낙인찍힐까 봐, ‘몰상식한 2번남’으로 몰릴까 봐 두려워한다. 1번 찍은 부모는 2번 찍은 아들 눈치를 본다. 이 사태에 나는 조금은 책임이 있다. 1년 남짓 정치부 기자로 일하며 정치 혐오를 일으키는 기사를 썼다. 한 기사의 제목은 ‘김성태 “야당 무시에 할복하고 싶다”’. 포털에서 ‘왜놈의 후예답게 할복해라’는 비난 댓글이 달렸고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부끄러운 일이다.
진보에 터 잡되, 듣는 거리는 최대한 오른쪽까지 닿아 보자. 그동안 반성하며 다짐한 말이지만 독자의 말들을 듣다 보면 혼란도 인다. ‘한겨레가 대선 때 조중동이나 종편과 다른 점이 구분이 잘 안됐다.’ 한 취재원이 창간 이후 30년 넘게 구독한 한겨레를 절독하겠다며 보낸 메시지다. 이 글을 쓰며 두려움도 든다. 진보지 기자가 윤석열을 찍은 사람과 ‘절친’이라는 이야기를 공적인 지면을 빌려 말해도 되려나.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강의를 들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해결할 문제는 타인을 설득하지 않고 풀릴 수 없다. (중략) 사람들이 같은 가치관과 도덕관을 가지면 하나의 집단이 생기고 열린 사고가 마비되기 때문이다.” 20대 대선이 끝난 뒤 현실은 교착상태다. 국민은 반반씩 갈렸다. 나와 다른 사람을 뽑았다는 이유로 서로 적대하는 마음도 보인다. 남은 과제가 있다면 적어도 애정하는 사람과는 좀 더 대화해보려는 노력 아닐까. 보수는 진보적 가치를 배우기 힘들고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내야 하는 시간이 왔다.
네 이야기를 칼럼에 쓰겠다, 전화를 걸어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가 진실을 털어놨다. 알고 보니 녀석은 19대 대선에서 홍준표를 찍었다. 내게는 유승민을 찍었다고 거짓말을 해왔다. 고향 친구 모임에서 사실을 말했다가 욕을 먹어서다. 한숨과 웃음이 나왔다. 친구가 더 먼 길 떠나지 않게 내 곁에 잘 두려 한다. 언젠가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고 애정을 품고 깊게 이해하게 하는 글을 쓸 수 있길. 그 글이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넘어 멀리멀리 가닿길. 그래서 말해본다. 윤석열 찍은 친구야, 우리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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