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우리는 전쟁과 국제정치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핵 위기의 위험이 고조되고 있고, 감염병, 지구온난화, 식량난, 식수난, 전쟁과 같은 전지구적 위기들이 서로의 위험을 더 강화하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 이 위기들에 대한 대처를 최우선순위로 두고 전세계적으로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에서 한심하게도 우리는 새로운 정치적 위기, 즉 맹렬하게 돌아온 ‘문명의 충돌’이라는 개념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
푸틴은 지금 ‘냉전’이 아닌 ‘뜨거운 평화’를 달성하고자 한다. 이는 평화 유지와 인도주의적 사명을 이유로 내세워 군사개입을 선언하는 영구적 전쟁 상태를 말한다. 러시아는 지금 우크라이나를 국가 대 국가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공격을 러시아의 지정학적 세력권 안에서의 평화 유지를 위한 정당한 개입으로 포장한다. 러시아가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그들이 자신들의 군사개입을 국가 대 국가의 무력충돌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 언론은 러시아의 입장을 이렇게 표현한다. “러시아와 미국, 중국, 인도는 큰 세력권이지만, 유럽은 러시아와 미국이 나눠 가지게 될 전리품에 불과하다.”
푸틴의 철학자 알렉산드르 두긴은 러시아의 이런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괴한 버전의 역사적 상대주의를 내세운다. “포스트모더니티는 이른바 진실이라는 것이 모두 신념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것을 믿고, 우리가 말하는 것을 믿는다. 이것이야말로 진실을 정의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에게는 고유한 러시아적 진실이 있다. 미국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미국이 더는 유일한 주인이 아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이는 우크라이나에도 적용되는가? 우크라이나인들도 자신들의 진실과 신념을 선택할 수 있는가? 아니면 우크라이나는 그저 ‘빅 보스’들이 노는 놀이터일 뿐인가? 러시아에 따르면 네 개의 지정학적 세력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 유지를 위한 개입일 뿐이다. 나토가 개입하면 전쟁이 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환경의 위기에도 꿈쩍 않던 사람들이 전쟁의 위기에만 움직인다면 우리 편이 이겼을 때 우리가 얻게 될 자유는 가치가 없는 자유일 것이다. 우리는 고를 수 없는 선택지를 쥐고 있다. 평화를 위한 협상을 선택한다면 러시아의 팽창주의를 만족시킬 것이고, 전면적인 대립을 선택한다면 세계대전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이 딜레마에 대한 유일한 해법은 상황을 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전지구적 자본주의 질서가 여러 층위에서 위기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야만적 전체주의 국가들 대 문명화된 서구 국가들 간의 충돌로 위험하게 단순화한다. 이 잘못된 관점 속에서는 기후변화와 같은 중요한 문제를 살필 방법이 사라진다. 실은 새로운 전쟁들 자체가 전지구적 문제들에 대한 반응이다. 앞으로 인류의 생존이 문제가 된다면 다른 이들보다 먼저 강한 위치를 점해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위기는 적대의 전선이 분명해지는 진실의 순간이 아니라 적대의 전선이 호도되는 기만의 시기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제한된 지평 속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대안이라는 것은 끔찍하게도 문명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일 뿐이다. 두긴의 표현으로는 여러 “진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그 사회라는 것은 강제결혼과 동성애 혐오조차 그것이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그곳이 전지구적 시장 질서에 온전히 통합되어 있기만 하다면 관용되는 세계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전면적으로 지지하되, 전쟁에 대한 매혹에 사로잡히는 일은 피해야 한다. 대신 문명 세력권으로 정렬되지 않은 운동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개념 자체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번역 김박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