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진 | 차세대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책상 위를 치워보면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을 안다. 처음 책상을 들여왔을 때, 텅 빈 공간에는 오직 원고지와 필기구만 놓여 있었다. 손길 닿는 곳마다 여백으로 가득해 상상력이 한껏 충전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하루가 멀다 하고 책이며 시시콜콜한 생활소품들이 들어차며 결국 치우는 걸 포기했다. 책상 위에 겨우 책 한권 펼쳐놓을 곳을 사수하는 데도 힘이 든다. 잡동사니만 책상 위를 점령한 게 아니다. 그 위에 어느새 먼지가 소복이 쌓였다. 대체 이 먼지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실내 공간에는 보이지 않는 먼지로 가득하다. 이것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보다는 크지만 머리카락보다는 훨씬 가는 미세한 가루 같은 것이다. 먼지는 향수처럼 특유한 성분의 냄새로 후각을 자극하거나, 비에 섞여 자동차 유리창에 달라붙어 큼지막한 자국을 남길 때가 아니라면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들도 햇빛을 피하지는 못한다. 워낙 크기가 작아 그 그림자를 분간하기는 어렵지만, 빛이 먼지를 통과하면 사방으로 산란하여 우리 눈에 반짝이는 모습을 이내 들키고 만다. 햇살이 창문 안으로 비스듬히 들어오자 실내를 돌아다니던 먼지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겨울철에는 찬 공기가 자주 내려와 바닥에 깔리면서 어느 계절보다 대기가 안정한 편이다. 생활 주변이나 이웃 나라에서 뿜어져 나온 먼지들이 들어오는 족족 쉬이 달아나지 못해 먼지농도가 높아진다. 이것들이 햇빛과 반응하면 2차 먼지가 만들어진다. 미세하고 오염된 먼지일수록 허파에 오래 머물며 각종 질환을 유발한다.
계절이 바뀌어 날이 따뜻해지면 대기 운동이 활발해지고 먼지도 덩달아 하늘 높은 곳까지 흩어진다. 게다가 온대저기압이 통과하며 비가 내릴 때마다 대기 중의 먼지도 빗물에 씻겨 내려간다. 대신 봄철이 되면 몽골이나 중국 북부의 건조지대에서 황사가 북서풍을 타고 자주 날아온다. 꽃가루가 날리는 시기와 겹치며, 때로는 색깔이 비슷한 송홧가루를 황사로 오인하기도 한다. 황사가 먼 길을 날아오는 동안 큰 먼지는 중간에 가라앉아버리고 한반도 상공에는 크기가 작아 가벼운 것들만 날아다닌다.
대기 중에 돌아다니는 먼지는 창틀이나 문틈 등 틈만 있으면 스멀스멀 집 안으로 들어온다. 실내에서도 먼지는 우리도 모르게 계속 만들어진다. 세제를 만지작거릴 때 퍼져 나온 분말이나, 생선을 프라이팬에 튀길 때 비린내와 함께 새어 나오는 연기가 실내에서 뒤섞인다. 소중한 사람을 담은 사진 액자나 컴퓨터 화면, 머리맡에 하룻밤 놔둔 안경 렌즈에도 예외 없이 먼지가 낀다. 결벽증이 심한 이들은 매일 실내 구석구석 닦아보지만, 먼지와의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먼지는 혐오의 대상이자 불편한 동거인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먼지가 없다면 과연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그 답은 구름에 물어봐야 한다. 깨끗한 환경에서 수증기가 구름이 되려면 상대습도가 몇백 퍼센트는 되어야 한다. 자연 상태에서는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하지만 먼지에는 수증기가 쉽게 달라붙을 수 있고 이것이 씨앗이 되어 구름방울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물이 지나치게 깨끗하면 물고기가 없듯이, 대기도 너무 깨끗하면 구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파란 하늘에 조각구름이 뜨고, 비나 눈이 와서 만물이 성장하고, 날이 개면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먼지가 있어서다. 갖기 싫은 먼지가 대기 중에 떠 있어서 자연이 멋지게 돌아간다는 게 사람 사는 이치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개성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신념이 다른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이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