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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민형의 여담] 유럽인은 누구인가

등록 2022-04-06 17:57수정 2022-04-07 17:36

여담
2018년 9월24일(현지시각) 영국 수학자 마이클 아티야가 독일 하이델베르크 수상자 포럼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수상자 포럼 트위터 갈무리
2018년 9월24일(현지시각) 영국 수학자 마이클 아티야가 독일 하이델베르크 수상자 포럼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수상자 포럼 트위터 갈무리

김민형 |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지난주 목요일 내가 일하는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에서 유럽수학회 창립 30주년 기념 학회가 개최됐다. 행사는 학회장을 맡고 있는 폴커 메어만(독일)의 강의로 시작해서 유럽수학회상 수상자 아나 카라이아니(루마니아)의 컬로퀴엄, 그리고 코로나 관련 전염병 수학을 주제로 한 강연으로 이어졌다. 나는 2019년 타계한 영국 수학자 마이클 아티야 추모 강연을 맡았다. 이 학회가 원래는 2020년에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유럽수학회의 설립에 앞장섰고 초대 회원이기도 했던 아티야를 추모하는 강연이 계획됐던 것이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행사에 걸맞게 유럽의 정체성에 대해서 숙고할 기회를 가졌다.

마이클 아티야는 20세기 수학의 최고 거장 중 하나였다. 그는 일생 동안 수학자에게 가능한 거의 모든 영예를 한몸에 받았다. 1966년 수학자에게 최고의 영광인 필즈상을 수상했고 2004년에는 노르웨이 정부가 ‘수학의 노벨상’을 목표로 만든 아벨상을 받았다. 그의 가장 유명한 업적인 ‘지표 정리’는 미분방정식 이론과 위상수학을 융합하는 결과로 20세기 후반의 수학과 물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생 동안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오가며 교수 생활을 한 그는 왕립과학원 회장, 트리니티 칼리지 학장을 역임했고 인생 후반기의 약 20년을 에든버러대학의 명예교수로 지냈다.

내 강의의 주제는 아티야의 위대한 학문적 업적들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세계적인 수학자’이기 전에 ‘세계인’이었던 그의 정체성을 유럽수학회 회원들과 논하고자 했다. 아티야는 1929년 런던에서 레바논 출신 아버지와 스코틀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아티야는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빅토리아 칼리지에서 중등 과정을 수학했다. 그 뒤 영국 맨체스터 그래머 스쿨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케임브리지대학에서 학부와 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여행이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온 가족이 영국과 수단 사이를 부단히 오갔고 소년기에도 동생과 단둘이 하르툼에서 아버지 친척들이 살던 베이루트, 그리고 고모가 살던 팔레스타인까지 자주 기차 여행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비교적 평화로운 세상이었다. 아티야는 자신의 인생 동안 큰 문화권의 분열을 몸으로 느꼈을 것이고 그 분열이 초래한 여러 분쟁의 아픔을 공감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어린 시절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국경과 지역의 구분이 영원하지 않을뿐더러 대체로는 그다지 오래되지도 않았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아티야는 실제로 지중해 변두리가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나누어진 현실을 대단히 이상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고대로부터 뚜렷한 구분이 없었던 문화권이 지금같이 갈라진 이유를 나와의 대화 중에도 자주 논하곤 했다.

내가 아티야를 알게 된 것은 그의 인생 마지막 3년간이었다. 정수론과 물리학의 교점에 대한 공통 관심사 때문에 그가 나를 에든버러에 초대한 이후 빈번한 이메일 교신과 대화를 통해서 생각을 공유했다. 처음 만난 직후 가장 놀란 면은 그에게서 아랍인의 정체성이 넘쳐난다는 사실이었다. 학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주류 중 주류 영국 수학자로만 생각했던 사람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자란 어린 시절 이야기를 즐기며 이슬람 문명의 역사를 상세히 논하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항상 쾌활한 성격 속에 숨어 있는 인간적 복잡성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즉, 그만큼 각광받은 학자도 유럽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점차 파악했다. 참고로 그의 아버지는 이슬람 문명과 유럽의 관계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옥스퍼드 유니언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인에 대한 격한 토론에 참여하던 중 심장마비로 죽었다.

얼마 전 런던수학회 이사회에서 놀라운 통계를 하나 알아냈다. 이사회의 멤버 중 백인이 아닌 사람은 내가 역사상 두번째라는 사실이었다. 첫째가 바로 아티야였다. 유럽수학회 설립 30주년을 맞이하며 모든 회원에게 당부하고 싶었다. 유럽 수학자의 정의를 경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분쟁과 이민 문제, 또 공동의 적을 맞이했다는 흥분 때문에 요새 다시금 유럽의 정체를 좁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시기다.(최근 세계로 가는 문을 열고 있는 한국도 가끔 나타나는 유럽의 폐쇄적인 면을 본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다행히도 그날 모인 수학자들은 모두 이 조언에 귀 기울이며 공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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