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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산하의 청개구리] 살리는 기회, 죽이는 기회

등록 2022-04-10 15:25수정 2022-04-11 02:06

김산하 ㅣ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기회를 살리는 것.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아니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뭔가를 해낼 수 있는 여지나 가능성이 나타났을 때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활용해보려는 자세야말로 모든 변화를 일구어낸 힘이 아니겠는가? 역사는 잘 살린 기회들의 축적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살리다’라는 동사의 사용에 주목하자. 기회를 마치 어떤 생물처럼 다루는 이 표현은 기회의 한시적인 면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와 더불어 기회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천차만별이 되는 성장과 또는 소멸의 면을 지칭하기도 한다. 기회를 ‘살려놓는다’는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기회의 숨이 멎지 않도록 명을 늘림으로써 여전히 뭔가를 해볼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한다는 것도, 기회를 생명체처럼 접근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기후위기의 맥락에서 이러한 관점은 특히 중요하다. 당장의 실천과 변화는 그 자체로도 너무나 중요하지만, 동시에 기회의 생명을 연장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당장 탄소배출을 줄여 점점 악화되어가는 기후변화를 조금이라도 경감시켜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지금도 도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탄소의 양을 생각하면 그 어떤 감축행위도 불충분하다. 하지만 그 행위로 다 해결되진 못하더라도 그 행위들 덕에 아직 해결될 수 있는 여지가 생존한다는 것, 즉 희망을 살려놓는다는 사실이 핵심인 것이다.

지구의 온도상승을 1.5℃ 이내로 묶어둘 시간적 여유가 약 7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금 상기해야 한다. 이 시간 동안 탄소 문제가 다 해결될 가능성은 제로이다. 하지만 이 핵심적인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기회의 문 자체가 꽝 닫힐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좁은 틈새라도 남아 있을 것인지가 결정된다. 만약 지금조차 방만하게 보낸다면 7년 반의 시간 또한 급속히 줄어들 수도 있다. 기회의 목숨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가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는 더없이 중요하다. 특히 기후위기에 대응할 기회의 시간의 대부분을 새 정권이 차지할 것이라는 걸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처음부터 조짐이 좋지 않다. 지난달 출범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7개의 분과로 구성되었지만, 기후위기 대응이나 탄소중립은 별도의 독립된 분과가 되지 못했다. 결국 산업과 경제를 관장하는 제2분과로 분류되었지만 여기엔 탄소감축 분야의 전문가는 아무도 배치되지 않았다. 별도의 분과를 둬도 당연한 기후위기 문제를 산업과 경제 하위로 둔다는 것 자체가 이미 본 사안에 대한 인식을 여실히 드러낸다고 하겠다. 인수위 초기에 환경부에서 파견된 공무원 또한 과장급 단 1명에 불과했을 정도이다.

한시가 급한 탄소감축에 대해서도 오히려 ‘속도조절’에 대한 기대감과 소문이 무성하다. 이미 국제사회에 제출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탄소중립기본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대체 무슨 희한한 묘안을 구상 중인 건지 심히 불안하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윤석열 당선자와의 통화에서 기후변화 대응 협력을 언급했다. 그런데 미국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유럽 천연가스의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150억㎥를 공급하기로 약속하면서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의존이 아니라,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도 이번 전쟁에서 가스를 무기로 사용했을 만큼 그에 대한 의존 자체는 기후변화든 국제 정세든 어느 맥락에서든 치명적이다. 기회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모든 기회를 살리는 자세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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