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 플렉켄슈타인 | 런던정경대 사회정책학과 부교수
이달 초 영국 정부가 코로나19와 관련해 남아 있던 규제를 모두 풀었다. 고통스러웠던 2년여를 지나 마침내 ‘위드 코로나’로 접어든 것이다. 경제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물론 전국 주요 도시 중심가에 텅 빈 상점이 여전히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코로나19가 바꿔버린 현실을 간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기 회복이 모든 곳에서 동일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와 보통 사람들은 지난 수십년간 경험하지 못한 물가 위기로 큰 고통을 떠안고 있다.
코로나19는 뿌리 깊었던 사회적 불평등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또 강화시켰다. 그런데 영국이 1950년대 통계 발표 이래 사상 유례없는 급격한 삶의 질 추락을 경험한 것은 ‘회복’ 이후다. ‘뉴 노멀’로 복귀하기를 희망했던 것과 달리, 역설적이게도 세계적 경기 회복은 빈곤을 가중시켰고 중산층을 쥐어짰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에너지 가격 폭등이다. 석유 도매가격은 짧은 기간에 6배나 치솟았다. 세계적 경기 회복과 함께 에너지 수요가 덩달아 폭증한 탓이다. 이로 인해 에너지 공급 업체가 국내 소비자에게 부과할 수 있는 전기·석유의 최고가를 규정하는 이른바 ‘에너지 캡’이 50% 이상 상승했다. 에너지 캡은 관계 당국이 6개월에 한번씩 심사하는데, 오는 10월 다시 한번 크게 뛸 것으로 보인다.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것인지가 문제일 뿐, 우크라이나 사태는 분명 에너지 가격 상승의 또 다른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기업은 에너지 캡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따라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기업이 감내해야 할 부담은 더욱 급격히 커졌다. 에너지 가격 폭등의 영향은 도처에서 감지할 수 있다.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올랐고, 슈퍼마켓의 생필품 진열대에서 이를 고통스럽게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집을 데워줄 난방 연료든 아이들에게 먹일 음식이든 그 어느 것도 물가 상승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연료와 음식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수많은 사람에게 현실이 됐다. 영국의 물가 상승률은 8%에 다가서고 있다.
집권 보수당의 재무장관은 이미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위기에 대처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로 경제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유례없는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탓에 재무부는 사회적 재난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할 여력이 없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일부에선 여력이 있는지조차 살피려 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급 학교는 굶주린 배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늘어날 것에 대비하고 있다. 빈민을 위해 식료품을 무료배급하는 푸드뱅크도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일 때보다 이용자가 더 늘어날 것에 대비하고 있다. 지난 몇년 새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던 많은 지방정부와 특히 시민사회도 최근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영국을 비롯한 각국의 복지국가 모델은 불평등 심화와 만연한 빈곤으로 분명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풀뿌리 차원의 혁신적 노력은 분명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지역 차원에서 휘청대는 복지국가의 역할을 ‘대신’ 해주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정부가 먼저 충분한 소득을 보장해주고, 가장 어려운 처지로 내몰린 이들을 돕는 풀뿌리 차원의 노력을 지원해주는 효과적인 복지혼합경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개별 단위가 고립적으로 움직일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단위가 함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코로나19는 지역 차원의 노력이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하지만 이에 전적으로 기댈 수는 없다. 교회와 자선단체 등에 전적으로 의지하는(그리고 사실상 운에 맡기고 있는) ‘미국식 모델’ 대신, 능력 있는 국가가 나서서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다양한 주체를 지원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지역 차원의 노력을 강화한다면 혁신적인 해법을 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