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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소외된 세상을 꿈꾸는가

등록 2022-04-14 18:03수정 2022-04-15 02:35

[김상균의 메타버스] 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나는 해장국을 참 좋아한다. 일정이 여유로운 날이면 가끔 집 근처 해장국집을 찾아서 조금 늦은 아침 식사를 해결한다. 얼마 전 새로 개업한 집 근처 해장국집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니 커다란 무인단말기가 서 있었다. 음식을 고르고 결제를 하는 기기였다. 몇번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른 뒤에야 주문에 성공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으니 젊은 사람이 많이 보였다. 꽤 예스러운 맛을 추구하는 식당인데, 어르신이 많지 않아서 의외였다. 잠시 후 그 의문이 풀렸다. 필자의 부모보다 좀 더 연배가 높아 보이는 노부부가 식당에 들어섰다. 두 분은 머리를 맞대고 무인단말기 앞에서 의논해가며 한동안 씨름했다. 남편이 주방 쪽으로 가서 뭔가를 부탁하려는 순간, 아내가 남편의 팔을 잡아당기며 식당 밖으로 이끌었다. 뭔가를 해야 하나 하고 잠시 엉덩이를 들썩거렸으나, 이미 노부부는 식당을 떠나버렸다. 입구에 들어선 무인단말기. 누군가에게는 인건비를 낮춰주는 기계, 누군가에게는 사람보다 소통하기 편리한 점원이었겠으나, 누군가에게는 넘어서기 어려운 수문장 같은 존재였다.

한국소비자원이 2021년 말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60대 이상 인구의 디지털 쇼핑 이용 비율은 2019년 5.6%에서 2021년 57.6%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디지털 세상으로 이동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점은 확실하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93%를 넘어섰다. 팬데믹을 통해 60대 이상 인구 집단의 디지털 쇼핑 이용 비율이 10배나 급증하고, 스마트폰 보급률이 90%를 넘었으니 모든 이들이 순탄하게 디지털 세상을 살아간다고 봐야 할까? 이 수치를 뒤집어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7%는 스마트폰을 갖고 있지 않으며, 60대 이상의 42.4%는 매장을 방문해서 물건을 구매하고 있다. 2022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노년층의 70%는 인터넷뱅킹을 사용하지 않고 지점을 방문해서만 은행 업무를 보고 있다.

최근 1년 새 필자에게 의견을 물어온 기업의 상당수는 오프라인 매장을 좀 더 줄이고 객장을 없애서 고객들을 메타버스로 더 이끌려는 전략을 짜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7%, 42.4%, 70%의 우리 이웃은 어떤 상황을 겪을지 걱정된다. 기업들이 7%, 42.4%, 70%를 모르지는 않는다. 다만, 계산기를 눌러보면, 그런 이웃을 버리고 가도 빠른 디지털 전환이 기업에 경제적으로 더 유익하다고 판단할 뿐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개념이 있다. 연령과 성별, 국적, 장애 유무 등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이 공간, 제품, 서비스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디지털 세상, 메타버스는 유니버설 디자인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 머리에 기기를 뒤집어쓰고 양손으로 조종기를 잡고 사용해야 하는 가상현실 장치. 작년에만 그런 장치가 1000만대나 팔렸다. 누군가는 그런 장치를 이용해 먼 미래 세상을 탐험하거나, 지구 반대편 이들과 회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장치로 구현된 메타버스 공간은 한쪽 손에라도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는 몸을 꼼짝할 수 없는 이상한 세상일 뿐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세상을 열어준다. 세계인이 함께 어울리는 세상을 꿈꾼다.’ 기업들은 메타버스 관련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런 내용의 문구를 목표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30분을 걸어서 은행 객장을 찾는 어르신, 40분을 고생하며 어렵게 지하철 환승을 하는 장애인, 이들에게 현시점의 메타버스는 현실보다 더 접근하기 어려운 단절된 세상이다.

메타버스는 소외된 세상을 꿈꾸는가? 조금 늦게 가더라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수익이 적더라도, 유니버설 디자인이 구현된 세상, 모두를 위한 메타버스 세상을 창조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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