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포함한 외국어 교육의 목적은 시대 변화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22세기를 이끌어갈 세대에게 필요한 외국어 교육은 어떤 것인지 논의를 시작할 때다. 연합뉴스
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며칠 전 온라인 줌을 통한 다중언어 관련 학회에 발표자로 참여했다.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외국어 교육과 학습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되었다.
용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교육’은 주로 학교에서 이루어진다. 이에 비해 ‘학습’은 개인의 자발적 배움을 비롯해 훨씬 넓은 의미로 쓰인다. 학교에서 교육받지만 학습에 열의를 안 보이는 학생도 있으니, 교육을 받는다고 반드시 학습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 반대로 학교가 아니어도 스스로 배울 수 있으니 교육 없이도 학습은 가능하다.
교육과 학습의 차이는 외국어 세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19세기 후반 프로이센과 미국이 선도한 공립 교육은 다른 선진국으로 확산되었고, 제국주의를 통해 수많은 식민지로 보급되었다. 공교육 대상은 주로 초등교육이었고, 읽기나 쓰기와 산수 같은 기본 학력에 더해 애국 의식 고취가 목표였다. 중고등 과정은 소수의 엘리트가, 대학은 극히 소수의 엘리트만이 다닐 수 있었다. 나라와 지역 차이가 있지만, 흐름은 대부분 비슷했다.
상황이 달라진 건 20세기 중반부터다. 2차 세계대전, 냉전 등을 거치며 중고등 과정이 급속도로 대중화되었고, 대학의 대중화도 이어졌다. 정치·사회적 안정을 위해 중산층을 넓혀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교육에 대한 기대가 커졌고, 이는 곧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인으로 여겨졌다.
20세기 중반까지 외국어는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배울 수 있었다. 서양에서는 라틴어가 대표적이었고, 프랑스어와 영어가 뒤를 이었다. 그 무렵 강대국으로 급부상한 독일어도 점차 포함되었다. 외국어는 곧 엘리트 교양의 척도였다. 교육 목적 역시 교양 함양이었다. 교양은 곧 대중과의 차별화를 뜻했다. 외국어는 엘리트에게만 제공하는 지식이자 지배 도구 중 하나였다.
그런데 중고등학교와 대학이 대중화되면서 외국어에 대한 인식과 기대가 점차 달라졌다. 문법과 독해 중심의, 교양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말하기 교육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그 요구를 채우기 위해 말하기를 효과적으로 가르치려는 여러 교수법이 앞다퉈 나왔지만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
20세기 말 이후 ‘글로벌 영어’ 확산과 유럽 통합으로 실용적 교육에 대한 요구는 더욱 강해졌다. 사회에서의 경쟁력을 위해 많은 사람이 학교교육과 별도로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았다. 외국어학원, 어학연수, 유학, 배낭여행의 유행은 이 시대의 산물이었고, 외국어를 잘 배우려는 이들은 주로 학교 바깥에서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활용했다.
오늘날은 어떨까. 정규학교 외국어 과정은 여전히 20세기 말에 머물러 있다. 학교에서 외국어를 배우긴 하지만 말하기를 배우는 데 적합한 환경은 아니니 더 잘하고 싶다면 학교 밖에서 학습 기회를 찾아야 한다.
어렵게 실력을 쌓아도 유지를 하려면 꾸준한 학습이 필요하다는 점도 문제다. 학교 안팎에서 열심히 배워도 외국어는 활용 기회가 적으면 자연스럽게 잊힌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쓰지 않으면 실력은 손실된다. 외국어만 그런 건 아니지만, 특히 외국어는 잊어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감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부분이 중요하다. 학교를 떠난 성인들은 지속적으로 외국어 학습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여겼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렇게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온라인을 통한 외국어 학습은 이미 자리를 잡았다. 지난 몇년 동안 모임과 여행이 어려운 시절을 거치면서 온라인 학습은 더욱 깊게 뿌리를 내렸다.
그런 한편으로 인공지능이 급속도로 발달해 이제는 클릭 한번으로 간단히 읽고 싶은 것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어색한 부분은 있지만, 뜻을 이해하는 데는 충분하고, 머지않아 말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자 우리는 새로운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런 시대에 외국어를 배우는 게 과연 무슨 의미일까. 즉 인공지능을 가교 삼아 서로 다른 언어의 소통이 더 원활해진다면 굳이 학교에서 외국어를 배워야 할까. 꼭 배우고 싶거나 필요한 사람만 개인적으로 알아서 학습하면 되지 않을까?
역사적으로 교육 내용과 교수법 전반에 대한 논의는 활발했다. 하지만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예나 지금이나 무척 드물다. 오랜 시간 해왔으니 당연히 해야 한다는 명분이 과연 언제까지 통할까. 22세기를 이끌어갈 세대에게 필요한 학력은 무엇이어야 하며, 그들의 정신적인 발전 속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