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 작가·시셰퍼드 활동가
존경받는 자, 지위 높은 자, 돈 많은 자, 힘센 자, 똑똑한 자, 외모가 매력적인 자… ‘덕목’들이 분산되어 존재하던 때가 있었다. 혼자 모든 걸 가질 순 없다는 상식이 통용되던, 보이지 않는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던 옛날 옛적. 그러다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겸비와 쏠림’의 시대가 도래해 있었다. 외모가 잘나면 돈이 벌리고, 돈이 지위를 높이고, 지위는 추종자를 만들고, 추종자는 더 많은 돈과 힘을 불러오는 시대의 교훈은 단순하다. 일단 뜨기만 해라! 추종자만 상당수 확보하면 그 머릿수를 현금화할 방도는 많다. 영향력이 곧 재화인 주목 경제 속에선, 상징 자본을 지렛대 삼아 도약 안 하는 자가 바보다. 동시에 웬만한 현실·가상 세계의 구석구석을 온갖 화면들이 파고들었고 그곳엔 어김없이 광고가 붙었다. 광고 환경은 새로운 자연이 됐으며, 광고 숲을 살아가는 디지털 원주민은 ‘광고 거부 감각’부터 퇴화됐다.
그렇게 새로운 직종 ‘인플루언서’의 탄생을 위한 조건들이 갖춰졌다. 당당히 인플루언서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사람도 점점 늘어났다. 전문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직업이 따로 있다는 사실, 온라인 사전에 등재된 이 단어의 두번째 뜻이 “많은 온라인 팔로어를 보유하며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자”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인플루언서의 영향은 그냥 영향이 아니라 돈이 되는 ‘구매 영향력’인 것.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영향, 그것은 무엇인가! 이미 질주하는 돛단배에 추가로 부는 바람, ‘순풍’도 영향은 영향이리라. 하지만 의미 있는 영향일까? 인플루언서들의 영향은 대개 기존의 경향을 강화한다. 자본주의 체제가 지향하고 장려하는, 더 많은 물건을 더 빨리 사고 더 쉽게 버리도록 자극하는 방향으로. 그래야 시장이 돌아가니까.
비금전적 가치를 강조하는 인플루언서도 일부 있긴 있다. 그래서 ‘선한 영향력’이란 용어까지 나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표준 ‘구독자’가 허용하는 범위 내의 ‘착함’이지, 주제넘게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했다간 ‘손님’이 우수수 떨어져나가는 건 순간이다. 팔로어는 맹목적 추종자가 아니라 선택적으로 영향받으려는 상당히 까다로운 주체이기 때문이다. 인플루언서만큼 그 생리에 예민한 사람도 없다. 추종자를 많이 거느릴수록, 넘어선 안 되는 선에 관한 자기검열 감각도 발달한다. 동시에 영향력의 폭과 깊이도 점점 줄어든다. 팔로어가 증가할수록 (사회를 바꿀 진짜) 영향력은 감소하는 역설… 이쯤 되면 인플루언서의 실제 역할은, 흥미는 끌되 심기는 안 건드릴 적당한 콘텐츠를 공급하며(다른 말로, 자본 기계에 기생해 구독자 수와 ‘좋아요’를 챙기고 현금화하며) 체제 공고화에 일조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 체제가 만족스럽다면야 이게 다 무슨 상관이랴. 문제는 딱 하나. 전지구적으로 심각한 이 생태적 파국이 인플루언서-팔로어-온라인 플랫폼도 일심동체로 공헌하는, 바로 자본주의의 문제 때문이라는, 그래서 시급히 손봐야 한다는 것! 이 기후·생태 위기를 일컬어 그레타 툰베리는 “우리 집(지구)이 불탄다”고 표현했다. 현 체제를 ‘불난 집’에 비유하면, 대다수의 인플루언서들은 열심히 부채질 중이고, 팔로어들은 응원 중인 셈이다.
그렇다면 도전 과제는 명확하다. 영향력을 돈과 분리해야 한다. 가령, 넬슨 만델라나 마틴 루서 킹은 인플루언서라 불린 적 없이, 영향력을 돈과 결부시키지 않고도 세상을 이롭게 했다. 굳이 위인들을 소환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지구 가열로 멸종되는 산호초에, 산불로 잿더미가 되고 도축장에서 난도질당하는 수백억 마리의 동물들에게, 벌목과 채굴에 생존을 위협받는 원주민의 고통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단 한명의 구독자 없이도 온몸으로 발산하는 가장 중요한 영향을, 우리는 받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