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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반론: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의 제목운명론

등록 2022-04-27 12:11수정 2022-04-28 02:42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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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임윤경|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가수는 노래 제목 따라간다’는 가요계 속설이 있다. 이를테면 ‘마지막 콘서트’를 히트시킨 가수는 그 뒤 몇년간 쉬게 되고, ‘좋은 날’을 부른 가수는 이후 탄탄대로를 걸었다는 식의 ‘제목운명론’에 관한 속설이다. 강준만 교수가 엊그제 쓴 칼럼 ‘페미니즘과 ‘사회적 증거’’는 가수뿐 아니라 학자도 자기 글의 제목을 따라가나 싶을 만큼, 그가 몇년 전에 쓴 책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의 제목을 빼닮았다. 이 책 제목은 ‘과격한’ 사상 페미니즘이, 가르치려 드는 ‘오빠들’ 때문에 과격해지려 해도 과격해질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포착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그러니 ‘오빠’ 따윈 신경 쓰지 말고 “중단 없는 전진”으로 “억압과 착취의 오랜 역사에 종지부를 찍”으라고 말한다, 좀 다른 ‘오빠’인가? 싶게.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끝내라며 힘주던 강 교수가, 그러나 며칠 전 칼럼에서는 한국 페미니즘이 “억압 못지않게 성취”와 “절망 못지않게 희망”에 대해서도 말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것도 6년 전 출간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에 나온 통계에 대한 다른 작가의 말장난 같은 문제제기를 받아들이며 말이다. 대기업 설문조사 결과, 비슷한 조건이라면 ‘남성 선호’ 44%, ‘여성 선호’ 0%, 까지만 적은 조남주에게 ‘남성 여성 상관없다’ 56%까지 써서 여성들에게 “부족하나마” “희망”을 말했어야 했다며, 페미니즘이 “울분으로 인한 폭발 일보 직전에” 있는 것 같아 해본 생각이라고 ‘맨스플레인’ 했다, 예의 그 ‘오빠’답게.

대형 은행의 성차별적 채용에 영향력을 행사한 임원이 지난달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오랜 관행’ 등이 이유라 했다. 최근 10년 안팎으로 초·중등 교육과정과 대학진학률 등에서 남성을 앞질러온 여성들에게 절망 자체인 한국의 그 ‘오랜 관행’은 2022년도에도 이렇듯 그대로인데 성별 상관없이 채용한다는 기업이 ‘무려’ 56%나 된다고 적으면 여성들은 벅찬 희망을 안게 될까? 또한 이 지체된 당연함에 맥없는 희망이라도 품는 여성이 많아지게 하는 건 소설가가 해야 하는 일인가? 그 많은 ‘오빠들’은 뭘 하고!

강 교수의 충고는 또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약속이나 한 듯” 성 격차 지수(156개국 중 한국 102위)만 말고, 한국이 “후진국이 아니라는 걸” 보이는 다른 성평등 통계도 보이라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이 국제지표를 거론하는 이유는 한국 정부가 국내 여성들의 구체적 경험과 진술엔 꿈쩍 않다가 ‘후지게도’ 글로벌 순위에는 조금이나마 움찔하기 때문이다. 성 격차 지수 인용은 강 교수의 지적대로 여성들을 “비참하게” 보이려고 해서가 아니라, 남성을 앞지른 한국 여성의 높아진 교육 수준에 걸맞게 여성의 경제·정치 참여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성별 임금격차 30% 등 분명한 현실 앞에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하고, 곧 들어설 내각에 여성 장관이 20%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해선 “장관급…에는 여성이 별로 없지만, 차관급…에는 여성 인재들이 굉장히 많다”는 발언을 그 누구도 아닌 대통령 당선자가 천연덕스레 해대는 이 후진적이고 절망스러운 상황이 성 격차 지수를 “약속이나 한 듯” 자꾸 소환하게 하는 것이다.

억압과 착취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페미니스트 투쟁에 동참하는 대신, 응원‘만’ 하겠다며 멀찌감치 팔짱 끼고 관망하면서, 민주노총에는 엄두도 못 낼 “이렇게 해라” “그렇게 하지 마라” 훈수 두는 ‘오빠들’의 ‘오랜 관행’에 여성들은 넌덜머리가 난다. 여야, 진영 없이 참견만 하는 이 낡은 관행 덕분에 강 교수와 다른 이념적 지향을 보이는 대통령 당선자 역시 건전한 남녀교제를 위해 “페미니즘도 건강한 페미니즘이어야 한다”며 페미니즘의 “울분”을 경계시키는 강 교수 옆으로 일찌감치 한발 담갔다. 이로써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은 의도치 않게(?) 제목 그대로 비꼬임 없이 현실에서 구현되었고, 학자의 ‘제목운명론’도 완성되었다, 젠더 문제엔 꼭 협력하고야 마는 진보·보수 ‘오빠들’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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