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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갈 수는 없다

등록 2022-05-04 18:04수정 2022-05-05 02:10

[편집국에서] 김진철 | 경제산업부장

그 무지막지했던 코로나 시대를 실은 다소 낭만적(?)으로 여겼던 적도 있다. 숱한 죽음과 고통을 목도해온 팬데믹과 아직 끝나지 않은 비극을 생각하면 실없는 소리, 해괴망측한 발상이 아닌가 싶기도 할 터이다. 그러나 거리두기를 통해 스스로 유폐한 인간들을 떠올리며 골방에 갇힌 최후의 인간이 과연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데로 생각이 미치면 그럴싸한 뭔가를 남기지 않을까 공상하는 일도 없지 않았다.

신체 말단이 괴사하고 몸이 까맣게 되어 죽어간 이들이 7500만에서 많게는 2억에 이르렀던 14세기에 조반니 보카치오(1313~1375)는 근대문학의 첫머리로 꼽히는 <데카메론>(1353)을 썼다. 중세 수도사와 귀부인, 수녀들과 정원사 등이 벌인 성적 유희로 적나라한 이 고전은,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던 피렌체에서 시골로 몸을 피한 남녀 10명이 열흘간 풀어놓은 이야기 100개를 담고 있다.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이야기 외에는 어떤 것도 갖고 들어오지 말자고 결의한 인물들은 자유분방하고 재치 번뜩이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 옛날 ‘빨간책’으로 소비됐다 해도, <데카메론>의 핵심은 인간의 발견으로 읽힌다. 새로운 중세가 여러 겹으로 발굴되고는 있으나, 그럼에도 신에 짓눌리고 종교적 위엄에 압도된 반쪽짜리 인간이 흑사병 시대에 살아남아 현실의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는 실마리를 이 작품은 보여준다. 중세적 인간관에 가려져 있던 인간이 떼죽음의 공포를 넘어서 살아 숨 쉬는 생생한 인간으로 부활한 것이다. 그러니 인류의 막대한 희생이 아주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데카메론>을 떠올린 것은 뜬금없는 일이었다. 시루 속 콩나물 대가리처럼 빼곡 내민 시야에 들어온 광고 문구. ‘바쁜 직장인을 위한 슬기로운’까지 읽고, 숨이 잠깐 멈췄다. 이어지는 굵은 글씨는 ‘야간투석’이었다. 정기적으로 혈액을 몸 밖으로 뽑아내 기계로 노폐물을 걸러내야 하는 만성신장질환 환자들에게, 혈액 투석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여건이 마련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런데 ‘낮엔 업무 밤엔 투석’이라는 발랄한 카피를 보고선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몇 해 전 청와대 청원에 ‘야간 투석병원 좀 만들어달라’는 호소가 올라갔던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됐다. 만성신장병을 앓는 이들에게 ‘야간 투석’이 ‘복지’인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팬데믹 2년을 지나 이제 얼굴을 내놓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게 됐다. 여전히 눈치 보여 어색하지만, 오밤중 시외버스는 만원이고 사무실 거리 식당들은 시끌벅적한 점심시간을 다시 맞이하고 있다. 조금은 편해진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음식과 술잔을 나누며 일상을 되찾고 있다. 그런데 뭔가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찝찝함이 가시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아직도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를 버리지 않고 있으며, 삼성 노동자들은 여전히 노조 가입 사실을 회사가 파악하지 못하기를 바란다. 몇몇 앞서가는 기업들은 국외 재택근무까지 허용하며 ‘뉴노멀’을 확장해가고 있지만, “아프면 쉬자”던 너무나 당연했던 외침은 명백히, 점차 사그라지고 있다. 일이 삶을 압도하는 시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주 120시간 바짝” 발언으로 뭇 시민들을 황당하게 했던 이가 곧 대통령이 된다. 일하다 사람이 죽는 반문명적 상황을 타개하려는 중대재해법도 손을 보고 주 52시간제도 허물어질 위기다. 흑사병이 <데카메론>만 낳은 것은 아니었다. ‘신의 분노’로 받아들여진 팬데믹은 장애인, 나병환자, 동성애자 등에 대한 혐오로 표출됐고, 마을 우물에 독약을 풀고 전염병을 퍼뜨린 주범으로 지목된 유대인들이 대량 학살되는 일도 그 시대의 기록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죽음과 공포를 이겨낸 도발적 상상력이 시대 전환의 기폭제로 작동했음을 오늘날 인류는 알고 있다. 마스크를 벗기 시작하자 닥쳐온 철 지난 신자유주의 팬데믹 앞에서 지난 시기의 고통과 희생을 되돌아보며 일과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사유할 때다. 아무 일 없었던 듯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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