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와 같은 자포동물인 말미잘 역시 옥시벤존(oxy)의 독성에 취약하다. 옥시벤존이나 자외선(UV) 가운데 하나만 있으면 살 수 있지만(위) 둘 다 있으면 죽는다(아래). 사이언스 제공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5월에 접어들자 낮 햇빛이 제법 따갑다. 텔레비전 날씨 예보를 보면 자외선 지수도 꽤 높다. 그렇다 보니 선크림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자외선이 피부 노화의 주범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외출 전 습관적으로 선크림을 바르기도 한다.
선크림, 즉 자외선차단제의 주성분은 두 종류다. 먼저 이산화티타늄 같은 물리적 차단제로, 자외선이 피부에 닿기 전에 산란시킨다. 쉽게 말해 미세한 돌가루를 섞은 크림이다. 두번째는 옥시벤존 같은 화학적 차단제로, 자외선을 흡수해 열로 방출한다(양이 미미해 열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자외선 영역의 빛을 흡수하는 물감을 섞은 크림이라고 보면 된다. 돌가루를 섞으면 아무래도 발림성이 떨어지므로 화학적 차단제가 더 인기다.
그런데 최근 수년 사이 화학적 차단제로 널리 쓰이는 옥시벤존이 바다의 산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해안의 산호가 죽어 나가는 현상을 조사했더니, 선크림을 잔뜩 바른 사람들의 몸에서 바닷물로 녹아 나온 옥시벤존이 산호나 말미잘 같은 자포동물에게 독성으로 작용하더란 얘기다. 특히 해양 산성화나 수온 상승으로 공존하던 해조류가 사라져 백화된 산호에게 치명적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하와이, 버진아일랜드 등 몇몇 섬에서는 옥시벤존이 함유된 선크림을 바르지 못하게 법으로 금지했다.
지난주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옥시벤존이 자포동물에게 독성을 보이는 메커니즘을 규명한 논문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옥시벤존을 흡수한 공생 미생물이 이를 대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옥시벤존배당체가 자외선을
흡수해 그 에너지를 주변 생체분자에 전달한다. 그 결과 생체분자가 파괴되고 결국 자포동물은 세포가 손상돼 죽는다. 그나마 해조류가 있으면 옥시벤존배당체를 빠르게 분해해 독성을 줄이므로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는다.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코로나19가 치명적이듯 조류를 잃어 백화된 산호에게 옥시벤존이 결정타를 안긴다는 말이다.
옥시벤존이 해양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에도 인과관계가 불확실하다며 하와이 등 몇몇 지역을 빼면 여전히 선크림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이번 메커니즘 규명 연구로 옥시벤존 사용 규제에 관한 본격적인 검토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옥시벤존을 대체할 화학적 차단제를 선정할 때 그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야외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지 않은 도시인 가운데도 외출할 때 습관적으로 선크림을 바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외선은 피부의 비타민D 합성 등 건강에 이로운 면도 있어 무조건 피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불필요한 선크림 사용을 자제하며, 물놀이 때는 사용감이 좀 떨어지더라도 물리적 차단제가 들어간 제품을 사용해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는 해양생물들을 배려하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