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편집국에서] 김남일 | 사회부장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길만 건너면 되는 서초동 집에서 관용차로 출근했다. 걸어서 갔더니 태극기 부대가 얼굴을 알아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용산 미군기지 13번 게이트를 통해 첫 출근을 한 윤 대통령을 보며 그의 서초동 시절이 떠올랐다.
흥행 1위 영화 제목을 가져다 쓰면 용산에 멀티버스, 다중우주가 열렸다. 2019~2020년의 서초동이 시공간을 찢고 들어온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비집고 들어간 국방부 건물은 흡사 과거 어느 시점의 서초동 대검찰청을 통으로 옮겨 놓은 듯싶다. 공간이 그렇고 사람은 더 그렇다.
창문만 낸 밋밋한 국방부 건물 입면부는 두 마리 봉황을 얹은 것을 빼면 대검찰청과 비슷하다. 바로 옆 합동참모본부 건물을 대검찰청 건너편 서울중앙지검 청사와 겹쳐 보면 그 공간적 유사성이 도드라진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이 윤 대통령에겐 짜장면이었다. 검찰청에서 먹던 짜장 냄새 그리워 변호사에서 다시 검사로 돌아갔다는 그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윤 대통령 말은 진심이었던 것이다. 거기서는 싸우면서도 평온했고, 이기면서도 더 큰 것을 바랄 수 있었다. 간난신고 끝에 자신을 검찰총장까지 오르게 한 그 공간은 영혼이자 형식이었다. 그러니 청와대라는 기와집을 기어이 나와야 했던 것이다. 새 대통령 집무실 이름을 공모하는 것은 이곳이 실상은 대검찰청 용산분실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한 제스처인 셈이다.
청와대 구중궁궐을 나왔지만 아홉겹 사람벽을 쳤다. 둘러앉은 이들 면면은, 아무리 그래도 이제는 대통령인데 그럴 리 있겠느냐, 이런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게 만든다. 윤석열 검찰총장(대통령), 복두규 대검찰청 사무국장(대통령실 인사기획관), 이원모 대검찰청 연구관(인사비서관), 윤재순 대검찰청 운영지원과장(총무비서관), 강의구 검찰총장 비서관(부속실장). 대통령 권력의 원천인 인사, 돈, 문고리를 모조리 검찰총장 시절 부렸던 이들에게 맡겼다. 길게는 20여년 짜장 냄새를 함께 맡은 이들이다. 여기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 수사 공소장에 이름을 함께 올린 주진우(법률비서관), 좌천된 대구고검에서 만난 간첩 증거조작 사건의 주역 이시원(공직기강비서관), <조선일보> 검찰 기자로 자신을 취재했던 강훈(국정홍보비서관)까지. 이 정도 자기복제는 하나회를 들어다 청와대와 권력 핵심에 옮겨 심었던 전두환 신군부를 빼고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 윤석열 정부를 두고 신검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쿠데타 세력과 비교하는 것이 억울할 수 있다. 다만 선거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선출된 권력은 겸손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마치 73% 득표율로 당선된 대통령 행세를 한다. 그렇게 임명한 한 후보자 역시 평행우주를 열어젖혔다. 나는 너고 너는 나라는 거울상, 2019년의 조국 법무부 장관을 자신의 인사청문회에 불러들인 것이다. 대혼돈의 카오스, 운명의 데스티니, 일정표의 다이어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딸의 허위 스펙 의혹을 보도한 기자들을 고소한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통령도 국민을 고소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나라고 왜 고소 못 하냐는 취지다. 사실상 ‘소통령 수락 연설’을 한 셈이다.
윤 대통령이 정치를 몰라서 사람을 이렇게 쓴다고 생각한다면, 일부만 본 것이다. 누가 뭐라 하든 내가 경험한 검찰식 인사·조직·의사결정 시스템이 가장 뛰어나다는 확증편향이 없으면 이처럼 과감한 인사를 할 수 없다. 검찰 시스템을 확장하면 국가도 운영할 수 있다는 막무가내 믿음을, 나라면 반지성주의라 부르겠다.
윤 대통령이 조직과 사람을 거느렸던 시기는 짧다. 검찰총장 임기 2년을 못 채웠다. 그 짧은 시간 검찰 시스템은 안에서 무너지고 밖에서 공격받았다. 일선 검사들은 전 정권 ‘사쿠라 검사’들도 싫지만 ‘윤핵검’들에게도 진저리 친다. 용산에 재림한 서초동은 앞으로 5년 검찰 공화국에 우리 모두 구인됐음을 통보하는 영장의 알레고리다. 이것은 자유도, 지성도 아니다.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