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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준희의 여기 VAR] 중국 ‘제로 코로나’에 흔들리는 국제 스포츠

등록 2022-05-18 14:32수정 2022-05-19 02:33

정치·경제 논리에 악용되는 선수들의 ‘피, 땀, 눈물’
지난 4월 중국 상하이에 있는 한 국숫집 문이 굳게 닫혀있다. 중국 정부는 이른바 ‘제로 코로나’ 정책을 내세우며 상하이에 대한 봉쇄를 감행해왔다. 상하이/AP 연합뉴스
지난 4월 중국 상하이에 있는 한 국숫집 문이 굳게 닫혀있다. 중국 정부는 이른바 ‘제로 코로나’ 정책을 내세우며 상하이에 대한 봉쇄를 감행해왔다. 상하이/AP 연합뉴스

중국이 10월로 예정됐던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마저 뒤로 미뤘다. 이로써 중국은 무기한 연기를 결정한 항저우아시안게임을 포함해 올해와 내년 열릴 계획이던 주요 국제 스포츠 대회를 전부 연기·취소했다.

중국이 잇달아 스포츠 대회를 연기·포기하는 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고집하는 ‘제로 코로나’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이 모두 ‘위드 코로나’로 선회하고, 세계보건기구(WHO)가 공개적으로 “제로 코로나 정책은 지속 불가능하다”고 지적하지만 묵묵부답이다.

상하이에선 도시 봉쇄로 자유를 잃은 시민들이 생필품을 달라며 냄비를 두드린다. 이런 와중에 ‘왜 스포츠 행사를 열지 않느냐’고 따지는 건,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 정부 뜻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대회 연기를 찬성하고 나선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등 국제 체육 단체의 모습을 보면 기이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난여름 도쿄올림픽 개최 때로 돌아가 보자. 일본에선 당시 올림픽 개최 반대 여론이 80%를 넘었다. 특히 이때는 델타 변이가 발생해,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때였다. 델타 변이 치명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고, 전세계적으로 우려가 컸다. 그런데도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일본 정부는 대회를 강행했다.

이들은 반대 여론에 맞서 ‘선수들의 피와 땀을 헛되이 할 수 없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올림픽 무대를 준비해온 선수들을 위해, 더는 대회를 연기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일본 국민 사이에선 ‘일상생활도 못 하는 와중에 무슨 올림픽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당시 한 언론과 인터뷰한 도쿄도 내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한 학생이 ‘왜 운동회는 못 하는데, 올림픽은 하느냐’고 묻는데 말문이 막혔다”라며 “어린아이도 모순을 느낄 황당한 논리”라고 비판했다.

도쿄올림픽 반대 시위대가 지난해 7월 일본 도쿄에 있는 토마스 바흐 위원장 투숙 호텔로 진입하려 하자 일본 경찰이 이를 막아서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도쿄올림픽 반대 시위대가 지난해 7월 일본 도쿄에 있는 토마스 바흐 위원장 투숙 호텔로 진입하려 하자 일본 경찰이 이를 막아서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국제 스포츠 단체의 입장이 이렇게 바뀐 건 결국 돈 때문이다. 현재 아시안게임은 월드컵과 같은 해에 열린다. 이 때문에 월드컵과 겹치지 않으면서도, 여름올림픽 전초전 성격으로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는 홀수년도 개최를 원해왔다. 중계권 수익 등을 더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아시아올림픽평의회는 2019년에도 베트남에서 아시안게임을 치르려고 했으나, 베트남이 재정 문제를 이유로 대회 유치를 포기해 2018년 인도네시아로 개최지와 개최연도를 바꾼 바 있다. 중국 같은 든든한 ‘돈 줄’이 홀수년도 개최에 앞장서준다면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이렇게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자, 선수들의 ‘피·땀·눈물’을 외치던 이들이 이제는 “코로나19 우려로 대회 연기를 결정했다”고 태연하게 발표한다. 미지의 바이러스였던 델타 변이와 달리 오미크론은 치명성이 어느 정도 파악된데다, 지난여름과 달리 세계 각국은 위드 코로나로 선회해 반대에 부딪힐 일도 없다. 그런데도 대회 취소를 결정하면서, 이제는 누구 하나 선수들의 피와 땀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도쿄올림픽 강행 땐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선수들이 그저 대회 강행을 위한 방패막이였음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언제쯤 정치와 경제 논리에서 벗어나 스포츠 그 자체로 즐길 날이 올까. 지금은 요원해 보이기만 하다.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준비했을 선수들에게, 작은 위로의 말이나마 건네고 싶다.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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