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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치형의 과학 언저리] 정치인이 말하는 기술미래, 담대하도다

등록 2022-06-02 18:03수정 2022-06-03 02:39

김은혜 후보는 경기도 북부 의정부에서 인천공항까지 30분에 갈 수 있는 하이퍼루프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송영길 후보는 “구룡마을 개발해서 서울형 코인을 만들어 서울시민 전체에게 100만원씩 돌려주겠다”고 공약했다. (…)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기술로 유권자를 현혹하지 않는 후보를 알아보는 것이 유권자의 중요한 기술이 되었다.
김은혜 경기도 지사 후보가 2일 경기도 수원시 국민의힘 경기도당 대강당에 마련된 선거캠프에서 선거패배를 인정하고 있다. 수원/공동취재사진
김은혜 경기도 지사 후보가 2일 경기도 수원시 국민의힘 경기도당 대강당에 마련된 선거캠프에서 선거패배를 인정하고 있다. 수원/공동취재사진

전치형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주간

뽑을 사람도 없고 흥도 나지 않는 지방선거라는 말이 많았지만, 과학기술이 등장하는 공약들은 소소한 재미를 주었다. 때로 경쟁 후보에게 “공상과학소설에나 나올 법한 얘기”(오세훈)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유력 후보들은 서로 앞다투어 신기한 공약을 내놓았다. 예를 들어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김은혜 후보는 경기도 북부 의정부에서 인천공항까지 30분에 갈 수 있는 하이퍼루프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일론 머스크가 개발한다고 해서 널리 알려진 튜브형 고속열차인 하이퍼루프는 캘리포니아주의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사이를 35분 만에 주파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구축과 시험을 마치고 상용화될 때가 10년 뒤일지 20년 뒤일지 장담할 수 없다.

5월12일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에 나온 김은혜·강용석 후보가 주고받은 대화에는 하이퍼루프와 같은 신기술이 선거에 등장하는 이유가 잘 드러난다. 강 후보가 일론 머스크도 하이퍼루프를 아직 못 만들고 있다며 공약의 비현실성을 지적하자, 김 후보는 “누구든지 꿈을 꾸는 자가 현실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받아쳤다. 맞는 말이다. 선거는 공동체의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나와서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통로다. 그러나 어떤 꿈이든 다 선거에 들고나올 수 있는 건 아니다. 강 후보는 이렇게 비꼬았다. “임기가 4년인데, 임기가 한 40년 되면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경기도지사에 당선돼도 지킬 수 없는 공약이라는 얘기였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온 송영길 후보는 코인 열풍에 편승하는 공약을 내놓았다. 5월27일 제이티비시(JTBC) ‘썰전 라이브’에 출연한 그는 앵커에게 자신의 ‘서울 코인’ 구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구룡마을 개발해서 서울형 코인을 만들어 서울시민 전체에게 100만원씩 돌려주겠다니까요, 세금 들이지 않고. 얼마나, 1000만명한테 100만원씩 돌려주겠다. 바로 제 일년 안에 현금으로 환가해서 받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눈이 번쩍 뜨이는 얘기다. 앵커가 투기 목적으로 쓰이는 코인의 위험을 지적하자 송 후보는 자신이 만들려는 것은 “바로 현금으로 환가가 되는 그런 디지털자산”이라고 주장했다. 또 “누구나 집을 이 코인으로 살 수 있게 만들려고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집을 코인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이냐고 다시 묻는 앵커에게 송 후보는 그렇다고 확인해주었다.

지방선거 국면에서 유력 후보들이 불러들인 것은 미래기술이 아니라 기술미래라고 불러야 한다. 미래기술은 현재 존재하는 기술보다 더 발전한 기술, 앞으로 등장할 기술을 뜻한다. 미래기술은 공학자가 연구하여 현실화시킨다. 반면 기술미래는 기술을 중심으로 구축된 미래상, 더 나아가 기술을 들이밀며 현혹하는 미래상이다. 기술미래는 정치인의 발명품이자 무기이고, 거기에는 공학자가 참여할 수도 있지만 그 기술이 꼭 실현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임기 안에 실현될 수 있는 기술은 오히려 정치인이 바라지 않을 수 있다. 정치인에게는 하이퍼루프처럼 그럴듯하게 이름 붙일 수 있는 무엇이 있으면 충분하다. 기술미래의 효용은 당장 입증할 필요가 없는 환상을 제공한다는 데에 있다.

송영길 후보의 서울 코인도 단순히 미래기술이 아니라 일종의 기술미래다. 그가 유권자에게 던진 것은 새로운 기술 기반의 화폐만이 아니라 그 원리는 알 수 없지만 돈이 그냥 굴러오는 환상적인 세계다. 정치인은 그 기술을 직접 개발할 이유도 없고 그 기술이 과연 정당한 토대를 갖춘 것인지 입증할 필요도 없다. 코인이라는 가상세계가 집이라는 물리적 세계로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 따져보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각종 코인에 혹하는 마음이 자신에 대한 투표로 이어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우리는 하이퍼루프와 서울 코인이 가져다줄 멋진 신세계, 그 담대한 기술미래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다음 선거에는 또 다른 후보들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듯이 과학기술을 꺼내 들고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미래를 제시할 것이다. 그 기술미래들이 과연 경기도와 서울과 다른 모든 지역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부합하는지 검증할 시간도 없이 우리는 다시 투표소로 향하게 될 것인가.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기술로 유권자를 현혹하지 않는 후보를 알아보는 것이 유권자의 중요한 기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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