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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록페스티벌의 계절이 돌아온다

등록 2022-06-05 18:39수정 2022-06-20 17:01

‘크라잉넛’ 기타리스트 이상면이 먼저 읽고 그리다.
‘크라잉넛’ 기타리스트 이상면이 먼저 읽고 그리다.

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코로나로 인해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얼마나 일상의 찬란함을 잊고 살았던가!’

흥성스러운 여름밤 노천카페의 낭만도 즐길 수 없었고, 시원한 맥주와 함께하는 야구장의 함성을 들을 수도, 붉게 물든 단풍 아래 거리의 악사들을 볼 수도 없었다. 밤이면 텅 빈 도시를 외로운 가로등 불빛만이 쓸쓸히 비추고 있었다. 마치 에스에프(SF)영화 속 통제된 미래사회처럼 우리는 여러가지 규제와 격리까지 경험해보았다. 마스크는 우리의 표정을 훔쳐 가고 세상은 마치 감정을 빨아들이는 회색도시처럼 변해버렸다.

잃어버린 3년! 기나긴 터널이었다.

이제 대부분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는 해제됐다. 너무도 당연하다고 느꼈던 소중한 일상들이 커튼을 젖히면 들어오는 햇살처럼 쏟아지기 시작한다. 눈이 부시다. 너무 급하게 밖으로 달려나갔다간 발이 접질려 넘어질 수도 있다. 우리에겐 아직 지켜야 할 방역수칙이 남아 있다. 언제 또 위기 상황이 닥쳐올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방구석에만 있을 수는 없다. 힘든 시기지만 우리는 버텨왔다. 우리도 삶을 영위하고 즐길 필요가 있다. 곰팡이 필 듯 눅눅해진 몸뚱이를 햇볕에 널어 광합성시켜야 한다. 우울했던 영혼들에 한줄기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렇다. 드디어 3년 만에 록페스티벌(록페)의 계절이 다가온다.

천둥 같은 함성, 터질 듯한 떼창의 향연, 열기를 식혀주는 물대포 세레나데,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기차놀이…. ‘록페가 장난이야? 놀러 왔어?’라는 깃발 아래 전의를 다지며 탈진할 때까지 몸을 부딪치는 슬램군단과 록페 푸드코너의 별미 김치말이국수까지, 이 모든 게 그리웠다.

다 함께 점프하며 만들어간 하나의 물결, 스마트폰 라이트를 켜고 흔드는 모습을 무대 위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낮에는 다이아몬드로 이뤄진 파도가 밀려오는 것 같았고, 밤에는 별들이 꿀렁이며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온종일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공기와 섞여든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분명 산소와 함께 다양한 색깔의 음표들을 마셨을 것이다.

록페스티벌은 자유의 상징이다.

록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일상생활에서 벌어진다면 바로 신고당할 것이다. 지하철에서 슬램을 하거나, 비 오는 날 물안경을 쓰고 모르는 사람 어깨에 손을 얹고 기차놀이를 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넌다고 생각해보라. 누군가 ‘쯧쯧쯧, 이런 미친 ×들’이라며 손가락질할 것이다. 하지만 록페스티벌에서는 이 모든 게 허용된다. 평상시에 입기 힘든 의상을 입거나 뱀파이어 분장을 하거나, 진흙밭에서 헤엄을 쳐도 아무렇지 않은 날이다. 모두가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즐기기에 바쁘다. 남들 시선을 의식할 겨를이 없다. ‘록페가 장난이야? 놀러 왔어?’라고 써진 깃발은 사흘간의 록페를 통해 일상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생존을 위한 일탈’의 역설적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록페는 평화를 노래한다.

록페에서는 다양한 음악과 취향이 공존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존중과 배려의 마음이 있다. 소용돌이치는 슬램판에서 춤추다 넘어지면 갑자기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준다. 혼돈 속에서도 질서가 존재하고 굉음 속에서도 평온함이 있다. 또한 록페 기간만큼은 편을 가르지 않고 하나가 된다. 시끄러운 총소리 대신 아름다운 기타 소리가 있다. 서로 다름을 주장하기보다 다 같이 하나 되어 노래한다.

음악이 좋은 이유는 승패를 가르지 않아도 사람들을 열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음악이 잃어버린 우리의 표정에 다양한 감정을 선물할 것이라고 믿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그때의 기분을 동력 삼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의 일상에도 ‘록페’스러움이 필요하다.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기보다는 서로의 다름을 즐기고, 모두의 속도에 맞추기보다는 경쟁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는 게 어떨까. 아주 가끔은 일탈을 꿈꾸자. 미치지 않기 위해서.

록페스티벌에 갈 시간이 없다면 가까운 라이브클럽도 좋다. 때로는 색다른 모험을 떠나보자. 평소 안 가던 미술관이나 도서관에 가거나, 처음 먹어보는 이국적인 음식에 도전한다면 그것도 일상의 록페가 될 것이다. 자신만의 록페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조금이라도 맛보고 경험한다면 우리는 서로 다른 감정과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다시 땀과 낭만에 절어 별빛에 몸을 말리던 추억의 록페스티벌 계절이 다가온다. 선크림, 비옷, 모기약, 장화, 돗자리 등 챙겨야 할 게 많지만 무엇보다 체력을 챙겨 오길 바란다. 록페는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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