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선 |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대한민국은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그린뉴딜을 펼치고 있다. 화석연료 기반의 전력생산 방식에서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대전환하겠다는 약속이다. 아직도 신규 석탄발전소를 짓고 있는 마당에 얼마나 진실한 약속인지 의문이지만, 적어도 전기를 깨끗이 만들어야 한다는 데에는 국가적 합의가 있다. 기후위기 대응은 곧 청정에너지 확산과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공식이다.
하지만 전기만 바꾸는 건 반쪽짜리 전환이다. 우리가 생명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는 두가지다. 몸 밖의 에너지와 몸 안의 에너지. 몸 밖은 주로 전기를 쓴다. 불 켜고 밥 짓고 글쓰고 심지어 노래하는 일도 전기에 의존한다. 현대인은 전기 먹는 동물이다. 스마트폰 배터리의 충전율이 떨어지면 불안하다.
몸 안의 에너지는 고기로 충당한다. 현대인은 육식동물이다.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한다. 전기와 고기를 이토록 많이 먹는 건 최근의 일이다. 오늘날 기후위기는 산업화 이후 인류가 전기와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발생했다. 전체 탄소배출의 약 30%가 전기, 20%가 고기 생산 과정에서 나온다. 나머지 50%는 제조, 건설, 운송, 냉난방 등인데, 이 과정에서도 인간은 전기와 고기를 먹는다.
전기가 꼭 더러운 건 아니다.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로 만드는 전기가 더럽다. 화석이 무엇인가? 오래전 죽은 동식물의 썩은 찌꺼기다. 지하에서 캐낸 검은 사체를 불태우니 지구가 뜨겁다. 청정에너지 기술은 이 과정을 생략하고 훨씬 직접적인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불필요한 중간 단계가 사라질수록 에너지는 깨끗해진다.
어차피 지구 위 모든 에너지는 태양에서 온다. 햇빛을 식물이 광합성하고, 식물을 동물이 먹는다. 이제 인간은 식물처럼 직접 햇빛을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 동물의 사체를 태워서 에너지를 만들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동물의 사체를 먹어서 에너지를 만들 이유가 없다. 육식은 화석연료만큼이나 비효율적인 에너지 생산 방식이다. 인간은 고기를 먹기 위해 동물에게 식물을 왕창 먹인다. 쇠고기 1㎏을 만드는 데 옥수수 12㎏이 필요하다. 전세계 농지의 80%에서 가축사료용 작물이 재배된다.
‘비전화’(非電化, 전기에너지를 쓰지 않는 것)와 ‘비건’(vegan, 채식주의자)이 최선이다. 전기와 고기를 전혀 안 먹어도 인간은 잘 살 수 있다. 하지만 전 인류가 소로나 간디처럼 바뀌는 것에 나의 희망을 걸고 싶지 않다. 나 역시 비건이지만 전기는 쓴다. 엄밀히 말하면 고기도 먹는다. 콩고기, 밀고기 같은 식물성 대체육을 즐긴다. 나는 고기가 싫어서 비건이 된 게 아니다. 동물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고 싶을 뿐이다. 내 몸 안의 에너지를 최대한 무해하게 생산하고 싶다.
배양육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동물을 사육하는 대신 줄기세포를 뽑아서 실험실에서 기르는 고기다. 축산업에서는 돼지고기를 만드는 데 6개월이 걸리지만 배양육은 6일이면 된다. 탄소배출이 적고 무엇보다 동물의 고통과 죽음이 없다.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는 고기가 꺼림칙할 수 있다. 하지만 밀집형 사육 환경에서 항생제로 목숨을 부지하다가 도살된 동물의 사체가 깨끗할까, 배양육이 깨끗할까? 영어권에서는 배양육을 클린 미트, 청정육이라고 한다.
전기뿐만 아니라 고기도 바꿔야 한다. 참된 변화는 남이 아닌 나, 밖이 아닌 안에서부터 비롯된다. 내 몸 안 에너지부터 청정하게 만들자. 그린 뉴딜에는 먹거리 전환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국가가 비건 문화를 장려하고, 대체육과 배양육을 비롯한 비건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줄기세포 강국 아니었나? 이미 이스라엘은 입체(3D) 프린터로 스테이크용 고기를 찍어낸다. 석탄 없는 전기, 축산 없는 고기가 미래다. 탈석탄만큼 탈축산과 정의로운 전환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