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마리우폴시 메트로쇼핑레저센터에 있는 통합러시아당의 인도주의적 구호물자 배급소에 현지인들이 줄 서 있다. 러시아군은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지도부의 지원 요청에 따라 우크라이나에서 특별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마리우폴/타스 연합뉴스
[세계의 창] 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지금 서구 대중은 ‘푸틴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푸틴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도록 우리가 그를 너무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와 같은 질문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이처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와 전면전을 피하려는 노력 사이의 적당한 균형점이 어디인지를 반드시 찾아내 ‘레드라인’을 설정하겠다는 생각을 멈춰야 한다. 레드라인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 현재의 레드라인은 푸틴이 직접 계속해서 재설정하고 있고, 서구가 러시아의 행동에 그저 대응하는 방식으로 푸틴에게 도움을 주면서 형성되는 선이다. 우리는 푸틴의 행동에 그저 반응만 할 것이 아니라, 시선을 돌려 이른바 “자유로운 서구”가 지금 상황에서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살펴야 한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구의 지지가 지닌 모호한 지점을 분석하되 러시아를 분석할 때와 동일한 혹독함을 가지고 분석해야 한다. 오늘날 서구가 적용하고 있는 이중잣대는 유럽 자유주의의 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구 자유주의의 전통에 식민주의를 정당화했던 역사가 있음을 떠올려보자. 영국의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인권의 옹호자였던 존 로크는 과도한 사적 소유에 반대하는 논리를 통해 미국인들이 원주민의 땅을 빼앗는 것을 정당화한 바 있다. 로크는 토지는 그것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들이 소유해야 한다는 이론으로 식민주의의 기초를 제공했다.
최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세계는 미국 중심의 세계라는 관념이 무너지고 실용주의적 기준에 기반한 새로운 국제동맹이 등장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그가 말하는 “실용주의적 기준”은 물론 보편적 인권에 대한 무시를 뜻한다. 하지만 그가 “서구는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를 서구 민주주의의 축으로 삼으면서도 러시아인의 사유재산권은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말할 때는 동의할 만한 부분이 있다. 서구는 러시아 신흥재벌 ‘올리가르히’의 재산권만 제재하고 그칠 것이 아니라, 서구 신봉건주의 억만장자들의 재산권에도 제재를 가해야 한다.
우리가 레드라인을 설정하는 방향은 제3세계와의 연대를 분명히 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항구 봉쇄로 수많은 인류가 식량 위기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이에 트럭과 철도로 곡물 운송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봉쇄를 풀 것을 분명히 요구하고, 군함을 보내 곡물 수송선을 호위해야 한다. 이것은 우크라이나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있는 수억명 인류의 기아에 관한 문제다.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 레드라인을 그어야 한다.
얼마 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우크라이나는 팔레스타인이고, 러시아는 미국이라고 상상하라”고 주문했다. 우크라이나를 팔레스타인에 비유하자 많은 이스라엘인이 둘 사이에는 유사성이 없다며 불쾌해했고, 많은 이들이 우크라이나는 민주적인 주권국가지만, 팔레스타인은 국가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이 국가로 인정되지 않는 것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국가 될 권리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국가 될 권리를 부정하고 있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라브로프는 일말의 진실을 능숙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 자유주의 서구는 높은 잣대를 지극히 선택적으로만 적용한다는 점에서 위선적이다. 그렇지만 위선은 자신이 주장하는 기준을 위반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내적 비판에 노출하는 것도 의미한다. 우리가 자유주의 서구를 비판할 때 우리는 바로 그 자유주의 서구의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가 제안하는 세계는 위선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즉 세계적으로 합의된 윤리적 기준 없이 서로의 차이를 실용적으로 “존중”하는 세계다. 우리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미 본 적이 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을 때 탈레반과 중국은 거래했고, 그 결과 중국은 새로운 아프가니스탄을 용인하고, 탈레반은 중국이 위구르에서 하는 일을 모른 척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러시아가 지지하는 새로운 세계화의 모습이다.
자유주의 전통에서 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보편성을 가차 없이 주장하는 것이다.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순간 우리 역시 러시아와 똑같이 “실용적”으로 되고 만다.
번역 김박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