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1대 국회 하반기 원 구성 문제를 놓고 지루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3일 국회 의안과 앞 복도에 처리되지 못한 서류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우려했던 일이 결국 벌어졌다. 김창기 국세청장이 13일 국회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은 채 임명된 것이다. 국세청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2003년 이후 첫 사례다. 국회의 하반기 원 구성 지연 탓에 일어난 일로, 여야 모두의 직무유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청장의 ‘무청문 임명’은 전적으로 국회 책임이다. 국회는 김 청장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청문요청안을 지난달 16일 접수했지만, 법정 ‘청문 기한’인 20일을 그냥 흘려보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재송부 시한으로 못박은 지난 10일까지도 청문회를 열지 못했다. 윤 대통령에게 청문회 없이 임명할 기회를 열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국민이 국회에 맡긴 고위공직자 검증 의무와 권한을 스스로 저버린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회는 여야가 하반기 원 구성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기약 없는 ‘개점휴업’ 상태에 빠져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패배 뒤에 돌연 ‘하반기 법제사법위원장은 국민의힘 몫’이라는 지난해 여야 합의를 깨며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이 민주당 몫으로 돼 있던 국회의장 선출과 16개 상임위원장단 배분에 비협조로 일관하고, ‘검찰 수사-기소 완전 분리’ 문제를 다룰 사법개혁특위 참여까지 보이콧하면서 국회는 이제 아예 멈춰버리게 됐다.
국회가 공전하면서 의혹투성이인 박순애 교육부 장관 후보자,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김승겸 합참 의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일정 논의조차 없다. 이들의 청문 기한인 18일과 19일이 지나면 또 김 청장처럼 무청문 임명이 가능해진다.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치솟는 물가·유가·금리 등 시급한 민생 현안, ‘안전운임 일몰제’를 둘러싼 화물연대 파업 등에서도 국회는 아무런 역할을 못 한 채 손을 놓고 있다. 세비가 아깝다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이 와중에 여당에선 혁신위원회 구성 등 당권을 겨냥한 신경전이 한창이고, 야당은 파벌로 나뉘어 선거 연패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느라 소란스럽다. 선거철만 되면 투표하라고 독려하던 그 정당들이 맞나 싶을 정도다. 이런 식으로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면 국회도 정치권도 존재 의미가 없어진다. 볼썽사나운 당내 싸움에 골몰하며 여야가 경쟁적으로 국민의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건 아닌지 돌아보기 바란다. 국민에게 더 매서운 심판을 당하기 전에 여야는 국회 정상화 방안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