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린 찻잎에서 디엔에이를 추출해 분석한 결과 시료 하나에 최대 400종의 절지동물 디엔에이가 검출됐다. 잎을 찾은 동물이 남긴 극미량의 디엔에이를 증폭해 분석하는 기술 덕분에 식물과 동물의 다양한 상호작용이 드러났다. 위키피디아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지난 15일 학교 급식 열무김치에서 개구리 사체가 나오는 일이 또 일어났다. 지난달 30일 이후 두번째라 정부는 전국 열무김치 납품업체 전수조사를 하기로 했다. 대량으로 김치를 담그다 보니 열무를 제대로 씻지 않아 수확 때 딸려온 개구리도 함께 버무려진 것 같다.
개구리 사체처럼 눈에 띄지 않아서 그렇지 열무에는 작은 벌레도 있을 것이다. 실제 과거 인분을 비료로 쓸 때는 채소에 붙어 있던 회충, 요충 같은 기생충의 알이 몸 안으로 들어와 자라고 증식했다. 농약을 쓰지 않는 농산물일수록 재배하는 동안 더 많은 동물과 만났다.
개구리 사체 뉴스를 접하고 이런 심란한 생각을 하다 보니 최근 학술지 <생물학 서신>에 실린 한 논문이 떠올랐다. 티백에 들어 있는 녹차잎을 분석해보니 곤충과 거미 같은 절지동물 수백종의 디엔에이(DNA)가 검출됐다는 내용이다. 차나무에서 찻잎이 자라는 동안 수백종 절지동물이 집적거리며 흔적을 남겼다는 말이다. 허브차 재료인 민트나 카모마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어떤 시료에 존재하는 여러 생물 종의 디엔에이를 뭉뚱그려 ‘환경 디엔에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대변 디엔에이를 분석하면, 먹은 식재료뿐 아니라 장내 미생물 수백종의 실체가 드러난다. 찻잎이나 허브잎의 경우 곤충이 잎을 갉아먹을 때 묻은 침이나 잎에 싼 배설물에 들어 있는 세포 디엔에이가 정보원이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극미량의 디엔에이도 증폭해 분석할 수 있는 기술과 함께 수많은 종의 게놈을 해독해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놓은 덕분이다. 아울러 말린 잎이나 꽃잎에서는 디엔에이가 잘 파괴되지 않고 오래 보존되는 것도 그 이유다. 그런데도 말린 찻잎의 환경 디엔에이에서 이렇게 다양한 절지동물 종이 드러날 줄은 연구자들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식물과 주변 동물의 상호작용이 무척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얘기다.
환경 디엔에이로 밝혀진 절지동물을 분석하면 식물이 자란 지역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에만 서식하는 절지동물의 디엔에이는 역시 동아시아가 재배지인 찻잎 시료에서만 발견됐고 북미산 민트잎에서는 역시 그 지역에만 분포하는 절지동물의 디엔에이가 검출됐다. 작물의 환경 디엔에이가 산지를 알려주는 바코드인 셈이다.
최근 꿀벌이 사라지는 현상이 화제가 됐지만 사실 곤충을 비롯한 절지동물의 다양성 역시 줄어들고 있다. 외래종이 등장해 기존 생태계를 교란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주기적인 생태조사가 필요한데, 이번 연구로 말린 식물체의 환경 디엔에이 분석이 생태계를 모니터링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게 확인됐다. 특정 지역 시료의 환경 디엔에이에서 외래종의 존재가 드러나면 더 퍼지기 전에 방제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식의 활용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