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이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배달의민족(배민)의 실거리요금제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배민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에 대한 검증과 안전배달료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대한 | 라이더유니온 조합원
배달을 시작하고 벌써 3년이 흘렀다. 27살에 시작해 지금은 계란 한판 나이다.
시작은 너무나 쉬웠다. 동네배달대행사에서 면허증 확인하고 보증금 10만원을 내고 리스 오토바이를 받아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할 때 보통 오토바이는 렌트와 리스 가운데 선택하는데, 하루 사용료가 더 저렴한데다 1년 계약기간을 채우면 내 오토바이로 가져올 수 있는 리스를 선택했다.
그렇게 1년2개월을 배달대행사에서 일하다 팬데믹이 오면서, 배달의민족(배민)이나 쿠팡이츠 등에서 배달하는 이른바 플랫폼 노동자가 되었다. 당시는 너도나도 일반배달대행에서 더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던 배민, 쿠팡으로 갈아타던 때였다. 배민과 쿠팡은 기사 모집을 위해 돈을 엄청나게 쏟아붓고 있었다. 여러곳이 아닌 한곳만 배송하는 단건배달이라는 것도 장점이었다. ‘생각대로’라는 일반배달대행업체에선 평균 3~6개를 모아 배달을 했는데 쿠팡이츠와 배민은 한번에 한건 배달이니 여유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착오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실시간 배달수수료와 피크시간의 높은 수수료를 받기 위해선 정말 위험을 감수하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 납득이 안 되는 상황도 여럿 있었다. 라이더들은 최초 배달수수료 단가를 보고 콜을 수락하는데, 안내받은 수수료와 배달 완료 뒤 수수료가 달랐다. 고객센터에 항의하니 (서로 다른 액수가 나온) 스크린샷을 찍어 보여달라는데, 구글 정책상 앱 내 캡처가 안 돼 입증할 수가 없었다. 고객센터 상담사는 정해진 가이드로만 안내할 뿐, 결국 손해를 보고 말아야 했다.
개인이 아무리 불합리하다고 외치고 싸워봤자 씨알도 안 먹힐 거라는 생각에 2020년 12월께 라이더유니온이라는 배달노조를 찾아갔다. 이때부터 플랫폼 회사들이 혁신적이라고 말하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에 대항하면서 내 인생 첫 노조활동이 시작됐다. 사실 말이 좋아 인공지능이고 알고리즘이지, 어차피 사람이 하던 일을 사람이 프로그래밍해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 아닌가 싶을 때가 많았다. 일하다 보면 ‘이게 과연 인공지능이 계산해낸 최적의 일감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상황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치동에 있는데 잠실 롯데타워 또는 잠실새내까지 가서 픽업해서 다시 대치동 아파트로 배달하라는 콜을 받은 적이 있다. 4㎞ 이상 이동해 음식물을 픽업한 뒤 다시 4㎞ 이상 되돌아와 배달하란 것인데, 저녁시간에 편도 15~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왕복 운행하라니 이게 말이 되나? 보통 콜은 내가 있는 지역 근방에서 픽업해 근방으로 배달하는 것들인데, 인공지능은 되레 이렇게 꽤 먼 거리를 오가도록 지시를 내린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인공지능 배차 방식을 지금도 하루에 몇번씩 받곤 한다.
인공지능은 그냥 플랫폼 회사의 좋은 방패막이이자 우산 아닐까? 우리가 이런 문제를 제기해도 플랫폼 회사는 인공지능 뒤에 숨기 바쁘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점을 개선해야 하는데 오히려 인공지능을 내세우며 더 갑질을 한다. 영화에서나 그려지는 인공지능에 의해 지배되는 시대를 사는 것 아닌가 느낄 때도 잦다.
‘생각대로’나 ‘바로고’ ‘부릉’ 같은 일반배달대행업체 라이더들은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일반 직장인처럼 출퇴근 시간을 정해 놓고 일한다. 근로기준법상 이렇게 일하면 근로자로 봐야지만, 라이더들은 아직도 프리랜서, 개인사업자일 뿐이다. 이런 문제들이 산적한데 관계 부처와 정치권 움직임은 거북이보다 느리다. 두곳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라이더의 경우 한 사업장에서 월 소득 115만원 이상을 벌거나 93시간 이상을 일해야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전속성 기준 폐지에도 2년이 걸렸고,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투쟁을 해야 했다. 선진국들은 다르다고 한다. 스페인만 보더라도 배달라이더를 근로자로 인정하고 알고리즘을 공개하도록 한 ‘라이더법’이 지난해부터 시행되고 있다.
배달라이더는 플랫폼 노동자의 문제점을 몸으로 받아내는 직업군이다. 사회적으로 이슈화가 되면서 많은 점이 개선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자기가 일을 하는 수수료 결정권도 없을뿐더러 평점제도에 묶여 결국엔 회사가 원하는 대로 일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하지만, 우리는 플랫폼 노동자이자 개인사업자고 프리랜서일 뿐이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도로 위에 있을 것이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며, 여러분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한다.
※노회찬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