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트럼프는 그날 무엇을 하려 했나…미국에 대한 음모

등록 2022-07-10 18:20수정 2022-07-11 02:39

지난달 21일 미국 하원의 ‘1·6 의사당 난동’ 조사위원회가 개최한 청문회에서 증인들이 발언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미국 하원의 ‘1·6 의사당 난동’ 조사위원회가 개최한 청문회에서 증인들이 발언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세계의 창] 존 페퍼 |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2005년 개봉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을 본 한국인들은 강권 통치자 박정희의 암살 막후에서 벌어진 일들을 어느 정도 알게 됐다. 바로크풍 암살 음모와 음모자들의 무능력을 묘사한 이 작품은 풍자 영화다. 하지만 1979년 당시 한국인들은 ‘10·26 사태’에 충격을 받았고 한국 정치의 방향을 우려했다.

미국 의회의 지난해 1월6일 의사당 난동 사태 조사는 때때로 비슷한 점을 폭로해준다. 이번 경우는 대통령 살해가 아니라 그의 권력을 지켜주려는 음모에 관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비서실장 보좌관이었던 캐시디 허친슨이 영화 장면처럼 상세히 묘사한 음모의 복잡함과 모의자들의 무능은 ‘1·6 사태’도 비슷한 블랙 코미디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 정치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웃을 일들이 아니다. 미국, 미국 헌법, 민주주의, 법치에 근본적으로 반하는 음모에 대해 잠시 들여다보자. 2020년 11월 공화당 소속 대통령 트럼프는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에게 대선에서 졌다. 바이든은 일반투표에서 51.3%를 얻어 700만표 이상 앞섰다. 확보한 선거인단 수도 306 대 232로 차이가 크다. 그러나 애리조나·조지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주에서 수천표씩 다른 쪽으로 갔다면 트럼프가 이겼을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런 주들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며 재검표를 요구하고 많은 소송을 제기했다. 재검표에서 트럼프가 잃어버렸다는 표는 찾지 못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조지아주 당국에 “내 표를 찾아내라”고 압력을 가했다. 그의 지지자들은 법무부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동의하면 공화당이 입법부를 장악한 이런 주들에서 트럼프에게 표를 줄 사람들로 선거인단을 대체한다는 전술까지 짰다.

이런 것들이 1·6 사태의 서곡이었다. 2020년 12월 중순에 각 주가 실시한 선거인단 투표 결과가 그날 의회에서 공식 집계됐다. 펜스 부통령은 이를 법적으로 인증하고 대선 승자를 공식 선언했다. 트럼프의 마지막 희망은 적어도 펜스가 바이든의 승리 확정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1월6일 정오에 트럼프는 백악관 근처 지지자들 집회에서 연설했다. 군중 사이에는 바이든의 등극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려고 1마일 조금 넘는 거리에 있는 의사당을 공격할 계획을 세운 극우 정치집단과 준군사조직 구성원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는 허친슨 증언 덕에, 트럼프 행정부 구성원들이 그날 상황이 폭력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았으며, 트럼프는 일부 지지자들이 무장했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가 의사당으로 향하는 군중에 동참하려 했으며, 의회의 트럼프 측근들이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행동에 대한 사면을 사전에 계획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앞으로 트럼프 팀과 극우 민병대의 구체적 연계에 대한 증언이 의회 조사 과정에서 나올 수 있다.

박정희 암살과 달리 1·6 사태의 구체적 내용이 전부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든 풍자적 요소는 이미 드러났다. 예를 들면, 대선 나흘 뒤 트럼프의 법률 고문 루디 줄리아니는 트럼프가 펜실베이니아 선거 결과에 대해 다툴 것이라고 언론에 밝혔다. 기자회견은 포시즌스에서 열렸다. 하지만 필라델피아의 고급 호텔 포시즌스가 아니라 섹스숍과 화장장 근처에 있는 필라델피아 교외의 포시즌스 토털 조경이라는 곳에서 열린 것을 보면 캠프에서 누군가 실수한 게 틀림없다.

코미디언 스티브 앨런은 “비극도 시간이 흐르면 희극이 된다”고 했다. 박정희 암살이 <그때 그 사람들>로 풍자 대상이 되는 데 26년이 걸렸다. 1·6 사태는 코미디로 다뤄지기에는 너무 이르다. 어쨌든 트럼프는 아직도 강력한 정치적 인물이다. 그는 2024년 대선 출마 준비를 하고 있다.

의회의 1·6 사태 조사는 과거를 다루려는 게 아니라 오늘날 미국에 관한 조사다. 조사위원회는 트럼프의 반민주적 행위를 불법행위로 선언하고 미국에 대한 미래의 음모를 차단하려 한다. 웃을 일이 아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내란 수사 대상자’ 서울경찰청장 발령 강행한 최상목 1.

[사설] ‘내란 수사 대상자’ 서울경찰청장 발령 강행한 최상목

[사설] 극우교회 폭력·음모론 선동, 교계 스스로 정화 나서야 2.

[사설] 극우교회 폭력·음모론 선동, 교계 스스로 정화 나서야

국힘은 왜 ‘내란’에 끌려다니나 [2월10일 뉴스뷰리핑] 3.

국힘은 왜 ‘내란’에 끌려다니나 [2월10일 뉴스뷰리핑]

윤석열을 믿어봤다 [한겨레 프리즘] 4.

윤석열을 믿어봤다 [한겨레 프리즘]

[사설] ‘잘사니즘’ 이재명 대표, 오락가락 우클릭 우려 새겨야 5.

[사설] ‘잘사니즘’ 이재명 대표, 오락가락 우클릭 우려 새겨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