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사전] 원도ㅣ작가·경찰관
황인숙 시인의 시 ‘강’을 무척 좋아해서일까. 강은 내게 그런 곳이다. 방문하는 순간 괜히 헛헛해지게 만드는 곳. 박찬욱 감독 영화의 주인공이 별안간 들러 감정의 밑바닥을 보여줄 것만 같은 곳. 멋대로 들어가면 후회하기도 전에 이미, 나올 수 없는 곳.
서울 한강은 누군가에겐 탐욕의 상징이다. 언젠가 한강이 보이는 고급 아파트에 살겠다는 욕망을 가져본 적 없는 대한민국 국민이 있을까. 연예인들은 앞다투어 한강 뷰 아파트를 자랑하고 방송은 그들의 집을 목청껏 광고해준다. 그런 한강에서, 하루가 멀다고 사람이 떠오른다. 정말, 정말로 많은 사람이 죽는다. 여름철엔 평균 3~4일, 겨울엔 평균 10일 이내에 주검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추락한 이들은 끝끝내 한강을 벗어나지 못한다.
황인숙 시인은 ‘강’에서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난 주검을 수습하며 그 모든 감정을 똑똑히 목도한다. 변사자의 휴대폰 속 휑한 통화 목록을 보며 타인의 외로움을 오롯이 느낀다. 지갑 속 물 먹은 로또 종이에서 그들의 괴로움을 본다. 이리저리 번진 유서를 통해 미치기 직전인 이들의 심정을 두 눈으로 읽는다. 정말이지, 외치고 싶다.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고. 나 하나로도 삶이 벅찬 나는 이제 그만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고 싶다고. 이 일을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고. 하지만 괴롭다고 일을 그만둔다면 무엇으로 먹고살 건가? 내 지갑 속에도 낙첨된 로또 종이가 한가득하다. 외로움에 휘감긴 채 애써 연락을 돌린 휴대폰이 내 인생을 대변한다. 투신한 이들과 내가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사람 사는 건 왜 똑같기만 할까.
삼십대 후반의 남성이 한강에서 발견되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한강공원은 평일이든 휴일이든, 오전이든 오후든 모든 조건 불문하고 왜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도 않는지. 인양된 주검을 수습할 때마다 여간 곤욕을 치르는 게 아닌데,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변사자의 모습이 천 사이로 힐끗힐끗 비칠 때마다 주위를 둘러싼 구경꾼들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그중 어느 할아버지가 너무 노골적으로 사진을 찍기에 그만하시라고 말씀드렸더니 길길이 날뛰며 나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내 눈에 보이니까 찍었을 뿐이다. 나에겐 사진 찍을 자유가 있다. 당신네 경찰이 뭔데 내 자유를 막냐. 내가 사진을 찍겠다는데! 나는 머리가 지끈지끈해졌다. 제발 나한테 토로하지 않았으면. 감정일랑 단 한톨도 나에게 전가하지 않았으면. 하지만 할아버지는 제 화에 못 이겨 계속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지르더니 아예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손바닥만 한 전자기기에, 꼬박 이틀을 한강 속에 있다가 겨우 물 밖으로 나온 남성의 마지막 장면이 낱낱이 포착되고 있었다. 죽은 자라고 인권이 없는 게 아닌데. 액정 뒤 욕망으로 빛나는 늙은 눈동자를 나는 잊지 못하리라.
‘강’은 ‘넓고 길게 흐르는 큰 물줄기’로 통용되는 말이지만, ‘몸 안의 빈 곳’을 뜻하기도 한다. 과학수사에 오래 몸담은 어느 선배는 여름철 물놀이를 하다 사고로 사망한 아이들 주검을 너무 많이 본 나머지, 자신의 자녀와는 물놀이를 한번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뒤에서 팔짱 낀 채 아이들이 제대로 있는지만을 감시해왔단다. 강에서 익사한 초등학생의 눈꺼풀을 꽉 닫아주지 못한 초임 시절의 미숙함을 퇴직할 때까지 가슴에 담고 후회하는 대한민국 경찰관이 있다. 몸 안 어느 곳이 자신도 모르게 비어버린 사람들. 그 모습을 보며 어쩌면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를 후배 경찰관들, 그리고 나.
어느 것이든 물을 먹으면 몰골이 꽤 슬퍼지는 걸 알았다. 빵빵해져 수갑으로 변해버린 낡은 시곗줄. 출시된 지 오래되어 호환되는 액세서리도 잘 나오지 않는 휴대폰. 자기만의 소지품이 담긴 가방. 일렁이는 유족의 눈동자. 그리고, 사람. ‘강’ 속 마지막 시구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